동양사태 왜 일어났나… 남편 공조직-부인 비선라인 잇단 충돌
입력 2013-10-09 04:58
동양그룹의 불법 자금조달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룹 내부의 끊임없는 알력과 갈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1957년 창립 이래 재계 5위까지 올랐던 굴지의 대기업 몰락에는 현재현(64) 회장 중심의 공조직과 이혜경(60) 부회장의 친위세력 간에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8일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양그룹에는 현 회장이 이끄는 전략기획본부와 이 부회장의 ‘비선라인’이 존재했다. 이 두 조직은 굵직굵직한 현안을 놓고 맞섰고, 그때마다 승자는 이 부회장 측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의 발언권은 비록 부인이지만 창업주의 딸인 이 부회장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현 회장과 이 부회장은 그룹 운영 스타일부터 달랐다고 한다. 현 회장이 조용한 성격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쪽이었다면, 이 부회장은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였다. 이런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김철(39) 동양네트웍스 대표가 활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디자인 경영을 총괄하면서 인테리어와 디자인 업무에 능한 김 대표와 2008년 인연을 맺었다. 그룹 전략기획본부가 이 회장을 등에 업은 김 대표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략기획본부는 부사장급 본부장 밑에 인사·재무·기획·홍보 파트로 구성된 그룹의 컨트롤 타워였지만, 김 대표 라인과 맞붙어 판판이 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부 상황으로 인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구조조정 시기도 놓쳤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말 주력사업 부분인 레미콘과 가전부문 매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레미콘 공장과 선박 냉동창고 등을 팔아 1500억원대의 자금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결국 재계에서는 구조조정 실패의 이면에 이 부회장과 김 대표의 비선라인의 오판이 있었다는 시각이 많다. 이들이 전략기획본부를 배제하고 계열사와 자산 매각을 지연시켜 작금의 사태에 몰렸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의 ‘꼼수’로 의심받고 있는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법정관리 신청도 비선라인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날 ‘책임론’과 그룹 내 실세 주장에 대해 공식 반박했다. 그는 입장자료를 통해 “동양그룹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계획과 실행은 현 회장 및 전략기획본부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룹 내부 실세라는 설은 다른 임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 전날 동양시멘트 재무팀장의 자금 요청을 받고 부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