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배우기 어렵지만 큰 보람… 이젠 속담도 척척”

입력 2013-10-09 04:58


삼성전기 중국 가오신법인 영업부서에서 일하는 웨이 이(28·여)씨에게 한국어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국어를 배우다 평생 반려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사내 한국어 교육 과정에서 지금의 중국인 남자친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8일 경기도 수원시 매탄동 삼성전기 본사에서 만난 웨이씨는 “나보다 한국어를 못하던 그 사람이 먼저 한국어를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서 함께 공부를 하게 됐다”면서 “지금도 내가 한국어를 더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내년 봄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은 데이트할 때 한국어를 쓴다. 웨이씨는 “둘 다 중국어가 편하지만 한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렇게 정했다”면서 “싸울 때 한국어로 화를 내면 남자친구가 못 알아듣는다”면서 웃었다. 한국어에서 가장 어려운 게 ‘ㄹ’ 발음이라는 그는 “요즘은 드라마 ‘태양의 주군’이 너무 재미있다”면서 “소지섭이 이상형”이라고 즐거워했다.

이날 삼성전기 본사에는 웨이씨처럼 한국어에 푹 빠진 외국인 임직원 10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올해로 두 번째인 ‘글로벌 한국어 한마당’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 필리핀, 태국 등에서 왔다. 8개 해외법인에서 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참가한 한국어 숙련자들이다.

태국법인에서 설비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끄릭 쁘라바대차와씬(33)씨는 한국어를 배운 지 9개월 만에 회사에서 한국어 통역을 담당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한국어가 술술 풀렸던 건 아니다. 그는 “처음 한두 달은 어려워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어 습득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옥수수’였다. 그는 “태국어로 ‘옥’은 신체부위 중 가슴을 의미하고, ‘수수’는 힘내라는 의미다. 붙이면 ‘가슴아 힘내’ 정도인데 웃음이 나면서 그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국어 ‘잡’이 한국어 ‘잡다’와 음과 뜻이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국어 덕분에 업무 효율도 크게 올랐다. 그는 “설비 문제로 본사와 연락을 할 때 한국어로 소통하고 있다.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달하니 효율적이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에서 온 알릭스 달리봉(22·여)씨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좋아한다. 한국어를 어렵게 배웠지만 얻은 게 많기 때문이다. 달리봉씨는 “처음엔 받침 하나를 잘못 쓰는 바람에 시험에서 0점을 받았고, 문법이나 속담 등은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2011년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올해 2월 정직원이 됐다. 요즘 동생들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달리봉씨는 “열심히 하면 한국의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동생들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는 2002년부터 해외사업장의 현지 직원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100여명을 본사로 데리고 와 한국어를 가르친다. 자체적으로 4등급으로 나눠 교육하고 있고, 해외법인에는 한국어 생활관을 운영 중이다. 한국어가 능숙한 직원은 2년간 본사로 파견해 ‘한국지역전문가’로 육성하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삼성전기 노승환 인사팀장(전무)은 “서로 언어를 배우면서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됐다”며 “한국어를 익힌 직원들은 본사와 해외법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원=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