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조세형평성’ 강조 현오석 ‘책임 피하기’ 전략?

입력 2013-10-08 18:07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부족한 재원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메울 수 있다고 자신하던 기획재정부의 입장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감면 정비 등과 같이 세제 개편의 목적은 세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재부는 지난 5월 말 발표한 공약가계부에서 비과세 감면 정비(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27조2000억원), 금융소득 과세 강화(2조9000억원) 등을 통해 향후 5년 동안 48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유리지갑 털기 논란 끝에 내년 예산안을 수정하는 소동을 겪으면서도 “수정된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당초 계획했던 이행 재원은 차질 없이 마련된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정비가 난관에 부딪히면서 이런 기재부의 ‘굳은 심지’는 조금씩 흔들렸다. 지난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현 부총리를 출석시킨 가운데 복지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지하경제 양성화의 실효성을 집중 추궁했다. 여야 모두 재원조달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 주를 이뤘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은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원을 확보하려면 세무조사 징수율이 50∼60%인 상황에서 45조원 정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며 “세금을 부과해도 행정소송 패소율도 높고 굉장히 일정이 빠듯하다”고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어차피 지하경제에서 27조원을 양성화한다는 목표는 달성 불가능한 것”이라며 “정책 방향을 바꾸고 냉정하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증세를 건의하라”고 몰아세웠다.

당시 현 부총리는 “지하경제 양성화 목표는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최대한 노력해도 안 된다면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증세를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서 조세 형평성을 강조한 현 부총리의 발언은 재원 확보를 장담하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수 실적이 드러나는 연말쯤 불거질 책임론을 비켜가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