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부담에 국민연금 출산·軍복무 크레딧 확대 무산

입력 2013-10-08 18:07 수정 2013-10-09 01:17


“노후보장을 외치면서 정작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현 정부 복지정책은 기획재정부 논리에 다 막혔다.”(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박사)

출산과 군복무를 사회적 기여로 인정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연장해주는 출산 및 군복무 보너스(크레딧) 제도를 대폭 확대하라는 민간위원회 권고안이 정부 검토 과정에서 좌절됐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지난 8월 제도발전위원회의 권고안에서 몇 발짝이나 후퇴한 내용이었다. 특히 출산과 군복무 기간을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출산·군복무 보너스(크레딧) 제도가 원점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고 청년세대도 도울 수 있는 효과적 정책이 무산됐다”며 아쉬워했다. 종합운영계획은 국회보고 및 법령개정을 거쳐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사각지대 해소하겠다더니…기재부 논리에 막힌 정부=제도발전위가 확대를 제안한 출산 및 군복무 크레딧 제도란 자녀 출산과 군복무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국민연금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일종의 연금 보너스 제도다. 연금을 받을 때 둘째자녀부터 12개월(셋째 30개월, 넷째 48개월, 다섯째 50개월), 군필자의 경우 6개월을 가입기간에 더해주는 방식이다. 월 보험료로 따지면 자녀 한 명당 대략 3만원의 보험료를 더 받는 꼴이다. 제도발전위는 이걸 출산의 경우 최장 60개월, 군복무는 24개월 안팎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정부가 이런 권고안을 거부한 이유는 재정 부담 때문이다. 아이 한 명당 월 17만원의 보험료를 12개월간 세금으로 대납하자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그 정도 투자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스웨덴·독일(자녀 1명당 3년 인정) 등 대다수 유럽 선진국에서 출산 크레딧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가족의 간호·간병, 실업기간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인정해주거나 보험료를 대납해주고 있다”며 “출산과 군복무 크레딧은 선진국 기준으로는 최소한의 제도인데 이것마저 무산됐다는 것은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노동시장 참여 기회가 적은 주부의 노후 불안을 해소하려면 출산 크레딧 확대는 꼭 필요하다”며 “출산율 제고가 국민연금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정부가 간과했다.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1가구 1연금’에서 ‘1인 1연금’으로=긍정적 개선도 있다. 전업주부를 차별하는 가입자의 ‘혼인조건’은 폐지됐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를 낸 적이 있는 주부는 ‘가입이력자’로 분류돼 본인이 사망하거나 사고로 장애가 생겼을 때 유족 및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 부부를 한 세트로 보는 대신 1인 1연금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약 500만명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기존에는 주부와 미혼자를 차별했다. 똑같이 5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한 뒤 현재 보험료를 내지 않는 미혼의 A씨와 주부 B씨가 사망한 경우 A씨 가족에게는 유족연금이 나오는 반면 B씨 배우자에게는 혜택이 없었다.

부부 가입자 수급액도 일부 늘어났다. 자신의 노령연금과 사망한 남편의 유족연금 두 가지를 모두 받을 수 있는 경우 현재는 유족연금의 20%만 주던 것을 앞으로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논란이 됐던 보험료 인상은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5년 단위 제도개선이 이뤄지므로 적어도 2018년까지는 현행 보험료율(9%)이 유지될 전망이다. 최근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한 기초연금 논란 이후 정부가 보험료 인상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분석된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