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공휴일 된 한글날… ‘가나다’보다 ‘ABC’ 먼저 배우는 아기들
입력 2013-10-08 17:58
“Old MacDonald had a farm, ee-i ee-i oh.”
김모(30·여)씨는 최근 7개월 된 딸을 위해 버튼을 누르면 동요가 나오는 장난감을 구입했다. 장난감에서는 ‘맥도널드 아저씨의 농장(Old MacDonald had a farm)’이란 동요가 영어로 흘러나온다. 딸은 이 노래만 들리면 눈을 찡긋거리거나 발을 구르며 반응했다. 김씨는 8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 동요에 노출되면 나중에 영어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처럼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접하는 아기들이 늘고 있다. 말을 배우기 전에 갖고 노는 장난감이나 만화영화를 영어교육의 출발점으로 삼는 부모가 많아지면서 ‘영어 장난감’과 ‘영어 만화’가 유아기의 필수품이 돼 가고 있다.
영어 장난감의 인기가 높아지자 인터넷 육아정보 카페마다 해외 온라인 쇼핑몰 ‘공동구매’ 바람이 거세다. 이렇게 구매되는 대표적 장난감 ‘아기체육관’은 꽃 모양 버튼을 누르면 영어 동요가 흘러나온다. 또 여닫이문이 달린 플라스틱 장난감은 문을 열면 “공부할 시간이에요. 잇츠 러닝 타임(it’s learning time)”이란 말이 영어로 나온다. 요즘 웬만한 아기들은 다 갖고 있다고 해서 각각 ‘국민체육관’과 ‘국민문짝’이란 별칭이 붙었을 정도다.
미국의 유명 완구업체 피셔프라이스는 최근 한국 시장을 겨냥해 탁자 모양의 장난감 버튼을 누르면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나오는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한국에서 연매출이 25%나 성장했다. 디즈니 만화를 원어로 들려주는 케이블 채널이나 영어만화 ‘까이유·슈퍼와이’ 등이 들어 있는 IPTV 유아 전용 패키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육아정보 카페에는 “한국어 만화를 먼저 접하면 아기들이 영어 만화를 낯설게 여겨 보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영어 만화에 먼저 노출시켜야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글이 잇따른다. 인하대 교육학과 탁수연 교수는 “모국어가 완성되지 않은 채 외국어에 노출되는 건 학습효과가 크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