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라도 ‘정죄의 입’ 닫고 ‘긍휼의 눈’ 떠야… ‘비판의 기술’
입력 2013-10-08 17:46
비판의 기술/테리 쿠퍼 지음, 이지혜 옮김/IVP
사람들은 남의 말 하기를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비판을 잘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한다. 선거철이면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리는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는 보기 힘들고 옳고 그름을 칼같이 구별하듯 서로를 비판하기에 정신없다.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나왔을 때도 참 말들이 많았다. 일부 비판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영화의 반유대주의적 정서나 과도한 폭력성을 문제 삼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진보적인 측에서 훨씬 강도 높게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멜 깁슨이 돈에 미쳐서, 병적인 폭력성 때문에, 예수를 마초적으로 묘사하려고 이 작품을 찍었다고 왜곡했다. 멜 깁슨이 마음의 감동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고 직접 밝힌 동기를 코웃음 치며 깎아내렸다.
비판은 사실 세상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한쪽에서는 비판을 아예 금기시하고, 다른 쪽에선 나름의 신앙적 기준을 갖고 비판적 태도로 남을 정죄하기에 이른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 7:1∼2) 성경은 분명 이렇게 전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속적 기준에 신앙적 논리까지 더해 타인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세상 어느 누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게 살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분별하되, 비판하지 않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이 그런 면에서 도움을 준다. 그래서 부제도 ‘정죄를 벗어난 분별에 이르는 길’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비판과 비판주의의 차이를 잘 살펴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은 ‘비판주의를 지양하는 건전한 비판’이다. 건전한 비판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증거를 면밀히 검토하고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한계를 분명히 볼 줄 안다. 너그러운 태도와 관용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적·종교적 개념을 고수한다. 반면 비판주의는 ‘지나친 단순화와 모욕’이라는 전략을 취한다. 세상을 양자택일 구도로 나누고는 스스로를 부정적 집단에 배치시킨다. 모든 인간은 선한 사람 아니면 악한 사람, 온화한 사람 아니면 냉혈한, 진짜 아니면 사기꾼이다. 딱 떨어지는 양극단을 만들어 놓고 꼴불견 범주에 자신을 쑤셔 넣는다. 건전한 비판은 상처를 주는 행위나 잘못된 생각을 비판하지만, 비판주의는 잘못된 생각이나 파괴적인 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비판의 기술은 무엇인가. “남을 탓하고 판단하는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다른 사람들 때문에 스스로를 나무랄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한 가지는 우리가 판단하는 습관이요, 또 하나는 그 판단하는 습관에 대한 비판주의다. 그보다는 우리가 비판적인 성향으로 회피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이상 비판을 삼가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의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141쪽)
열린 마음과 너그러운 가슴을 품은 은혜의 공동체가 비판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대안이다. 은혜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용납을 경험하면 주변 세상을 평가하는 건강한 방법을 찾게 되고 지평을 넓힘으로써 남 탓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게 된다. 하지만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이에 저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매일의 영적 훈련을 통해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여행은 ‘적대감에서 긍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강한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지만 긍휼은 영적인 훈련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남의 말을 하기 전, 먼저 긍휼한 마음으로 그를 한번 바라보자.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