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글날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13-10-08 17:40

국적 불명의 말과 글에서 벗어나자

567주년 한글날 아침 우리는 어느 때보다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1991년 이후 23년 만에 법정 공휴일의 지위를 되찾은 것은 그만큼 한글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대변해준다. 한글은 남북한, 재외동포 사회는 물론 한류 바람을 타고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 국제언어의 위상을 차지해 가고 있다. 자기 문자를 갖고 있는 민족은 20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중 한글은 어느 민족의 언어보다도 과학적이며 창의적이고 다의적이라는 언어학자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한글날 아침 우리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욕설이 난무하고 은어, 비속어, 범람하는 외국어, 국적불명의 신조어, 무분별한 줄임말 등 한글 훼손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한글 경시 풍조도 심각하다. 모양만 한글일 뿐 상호간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한글 훼손에는 인터넷, 모바일 SNS, 방송 등이 복합적으로 일조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은어와 욕설이 난무하고 예능방송은 국적불명의 표현들을 쏟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완전 ∼하다’면서 ‘완전’이란 명사가 부사어로 잘못 쓰이고, ‘개∼’라는 접두사는 일상화되었다. ‘짱∼’ ‘졸∼’이라는 말도 청소년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접속어가 되어 버렸다. 왜곡된 영어 조기교육 바람도 한글 경시 풍조를 부채질하고 있다. 아이들이 한글을 미처 깨치기도 전에 영어로 읽고 쓰고 노래 부르는 사이 국적불명의 조어들을 먼저 습득하게 되는 것이 요즘 교육 현장이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국립국어원의 ‘2013 행정기관 공공언어 진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59개 공공기관에서 작성한 보도자료 587건 중 불과 12건만이 어문규정을 제대로 준수했다고 한다. 공문서의 98%가 어문규정을 위반했거나 맞춤법 오류,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디지털문화 확산과 국제화시대에 다양한 언어 사용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어법이나 어휘에다 외국어를 남발하는 사이 무의식중에 한글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아직도 한글을 지켜가자는 사회적 공감대는 넓지 않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나 동아리 중심으로 이른바 ‘우리말 지키기’ 운동을 펼쳐가는 수준이다. 작지만 소중한 노력들이다. 국회가 8일 한자로 된 의장 명패를 한글로 교체했다고 한다. 정치권부터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데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또 아름다운 한글로 아기 이름을 짓는 부모들이 늘어가는 것도 고무적이다.

이제라도 학교 현장과 가정에서부터 한글을 올바로 사용하는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한글은 567년의 역사가 담긴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자산이다.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정신이다. 그런 만큼 한글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고 아름답게 다듬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