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구성의 오류에 빠진 박근혜정부

입력 2013-10-08 17:27


“각각의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그것들의 조화를 종합적으로 모색해야”

빚 많은 어떤 가정이 애써 지출을 줄이면 머잖아 빚도 줄어들고 저축도 늘어날 터다. 하지만 모든 가계가 그렇게 한다면 경제는 소비 위축으로 활기를 잃고 결과적으로 저축을 열심히 한 가구들조차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른바 저축의 역설이다.

기업이나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재정적자로 고민하는 정부가 재정재건 차원에서 증세를 결정한다면 경기가 위축돼 재정 악화가 가중될 수 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초기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균형재정을 유지하려다 공황의 장기화를 초래하고 말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부분적으로 참인 일이 전체적으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때가 있다. 경제학원론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참인 것이 전체로도 참인 경우도 있다. 구성의 오류를 경계하는 것은 그 반대의 사례 탓이다.

요즘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보면 구성의 오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초연금 도입, 4대 중증질환 치료비 국가지원, 무상보육, 고용률 70% 달성, 지하경제 양성화, 창조경제 추진 등 하나같이 개별적으로는 의미 있고 필요한 정책이지만 총체적으로는 매끄럽게 작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정책 브레인들의 역할을 떠올려 보자. 당시 그들은 한국이 직면한 문제군(群)에 대해 하나하나 대안을 마련해 공약을 마련했을 것이다. 개별 사안에 대한 해법은 나름 멋지게 다듬었으나 전체를 묶어내는 노력에 이르기까지는 치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기초연금 도입 등 복지확대 해법을 내놓고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하경제 양성화, 넓은 세원 확보, 정부지출 삭감 및 조정 등이 거론된 것을 보면 그렇다. 박 대통령이 자신만만하게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강조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우선 재원 문제는 생각만큼 쉽게 해결되지 못하면서 새 정부의 고민이 시작됐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고사하고 올 들어 세수는 크게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했고 내년 예산안을 봐도 세출 구조조정은 예상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당장 기초연금이 공약에서 멀어졌고 뜬금없이 국민연금과 연계한 차등지급안이 등장해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또 일자리 해법의 일환으로 제기됐던 고용률 70% 달성도 요원하다. 중고령자 취업률 증가에 힘입어 고용률이 조금 올랐을 뿐 새로 나온 것이라고는 시간선택임금제라는 마치 불완전 취업을 조장하는 것 같은 내용이 고작이다. 신성장동력이 절실하다는 점과 관련해 내놓았을 창조경제는 개념조차 확실치 않은 채 용어만 무성하게 관가 주변을 떠돌고 있다.

박 대통령과 정책 브레인들의 나라와 국민에 대한 애정은 장삼이사의 것 이상일 것이다. 숱한 문제들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어렵사리 해법을 내놓으려고 애쓴 흔적들을 보면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의지와 현실, 애국심과 정책의 안착은 같지 않다. 이제는 구성의 오류에 빠진 정책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구성의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고민을 처음 시작했던 때로 되돌아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각각의 해법들이 초래할 문제들,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구성될 수 있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별 공약에 대한 가지치기나 폐기까지도 예외를 둬선 안 된다.

다음으로 박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정책 수정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는 항간에 거론되는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지우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책 브레인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한갓 구성의 오류를 몰랐을 리 없을 것이건만 이를 제대로 문제제기할 수 없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쏟아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정책은 그 어디에도 없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