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국군포로 유해 봉환

입력 2013-10-08 17:27

참 지난한 세월이 흘렀다. 반 백년도 아니고 60년이나 걸렸다. 북한에서 숨진 국군포로의 유골이 고국 품에 안기는데 걸린 세월이다. 고 손동식(1925년생)씨. 그에게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만 있었다. 그 일념이 그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고 말았다.

그는 육군 9사단 소속 이등중사(병장)로 전장을 누볐다. 불행히도 정전을 3개월 앞두고 적에게 생포됐다. 그의 삶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국군포로라는 ‘주홍글씨’ 탓에 평생 지하 막장에서 혹사당했다.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그의 육신을 폐암이 엄습했다. 병마와 싸우던 그는 1984년 딸 명화(51)씨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 유해를 고향에 묻어 달라.”

그로부터 21년이 지났다. 명화씨는 천신만고 끝에 탈북에 성공했다. 모질고 모진 형극의 세월이었다. 아버지 유해를 남한으로 봉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북한에 있는 친·인척의 도움과 사단법인 물망초 등 민간단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최근 유골을 국내로 봉환했다. 명화씨는 이 과정에서 정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봉환된 유골과 명화씨의 DNA를 비교해 부녀 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유골이 공식적으로 손씨의 것으로 확인되면 북한에서 숨진 뒤 국내로 봉환된 국군포로의 유해는 6구로 늘어난다. 2000∼2005년 사이 하와이에 있는 미국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가 북한 지역에서 한국군 유해 12구를 발굴해 국내로 봉환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 수많은 국군이 전사했지만 유해가 돌아온 것은 12구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군이 관리하고 있는 중국군 유해를 송환해 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중국의 유족들이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총부리를 겨누었던 과거의 적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중국 류옌둥 국무원 부총리는 “너무 고맙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남북 간에는 아무런 진전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유해 송환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북한에서 사망한 국군포로들의 유해와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있는 국군 전사자의 유골을 고국으로 봉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국군포로들이 남북이산가족상봉장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나올 수 있도록 북한 동의를 받아낼 필요가 있다.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이들을 챙기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책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