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 시절의 정조, 외할아버지에게 쓴 한글서한 발간 “조정에 흉한 상소… 분통이 터집니다”

입력 2013-10-07 19:02


조선시대 정조가 세손이던 시절 외할아버지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 39통을 엮은 ‘정종대왕어필간첩(正宗大王御筆簡帖)’이 발간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은 7일 한글날을 앞두고 영조 치하 당시 정조가 쓴 편지를 한국고전적국역총서 제11집으로 국역해 내놨다고 밝혔다. 도서관 측은 이번에 공개된 편지들은 정조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발언이라는 점에서 어떤 사료보다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외할아버지 홍봉한과 정순왕후의 오라비 김귀주로 대표되는 두 외척 간의 갈등이 정점을 이룬 시기, 세손의 속내와 감정이 격정적으로 드러나 있다. 1772년 7월 21일 편지에서 정조는 “조정에 흉한 상소(凶疏)가 가득하여 매우 음울하고 참혹하니, 고금 천하에 어디 이처럼 흉악하고 반역하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분통이 터져 나도 모르게 머리털이 곤두서서 관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라고 적었다. 이는 당시 김귀주가 홍봉한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린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으로, 내용뿐만 아니라 글씨 모양에도 그 격한 감정이 담겨 있다. 4년 뒤 정조는 즉위 직후 김귀주를 흑산도에 유배시키며 정치적 보복을 이뤘다.

또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편지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 언문으로 “이 봉서를 보내라 한 말씀을 받들고도 못 보내었으니 죄송한 마음 끝이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혜경궁 홍씨의 글씨는 전해진 것이 많지 않아 이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는 게 도서관 측의 설명이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지금까지 학계에 공개된 적이 없는 어찰들”이라며 “다른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어찰첩들이 공개되고 번역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