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호주머니 털어내는 대형병원들… 실태 파악 힘든 허점 악용

입력 2013-10-07 18:14 수정 2013-10-07 22:16


서울 대형병원에서 수술받은 폐암 환자 A씨는 주치의로부터 1회 200만원이 넘는 항암제 투여를 권유받았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너무 비쌌지만 생명이 오가는 마당에 거절하지 못했다. 또 다른 대형병원에서 카테터(관 모양 기구) 삽입술을 받은 B씨. 시술을 한 건 전공의였는데 전문의에 적용되는 선택진료비 3만4960원을 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식욕부진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암이나 에이즈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메게스트롤현탄액)을 처방받은 환자도 있었다. 비용은 환자가 전액 부담했다.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고가 항암제 등을 담당 의사에게 권유받거나 내지 않아도 될 치료재료비용을 100% 떠안은 환자가 이들만은 아니다. 거의 모든 대형병원들에서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비급여(보험 미적용) 치료비용을 환자에게 일상적으로 받고 있다는 사실이 정부의 현장실사를 통해 확인됐다.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비급여 의약품과 치료재료, 검사 등은 모두 국민건강보험법에 목록이 정해져 있다. 이 외의 항목에 대해 병원이 돈을 받는 건 불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지난해 전국 대형병원(상급종합병원) 31곳에 대한 ‘본인부담금 징수 실태(2011년 6∼11월)’를 조사한 결과 31곳 모두 최소 2000만원에서 최대 7억4100만원을 환자로부터 부당하게 받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총 64억1700만원이었다. 31개 상급종합병원의 건강보험 급여 총액 1조9930억원 가운데 0.3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낼 필요 없는 의료비 64억여원을 더 낸 셈이다. 이런 내용은 7일 민주당 김용익 의원실의 발표로 공개됐다.

가장 비중이 큰 건 역시 비급여 본인부담금이었다. 전체 부당 청구액의 96.5%를 차지했다. 병원들이 건강보험제도의 엄격한 감시를 받지 않는 보험 미적용 의약품과 치료재료 등을 쓰고 비용을 환자에게 100% 전가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뜻이다. 전산 심사를 받는 급여(보험 적용) 항목과 달리 비급여는 현장실사가 아니면 규모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허점을 악용한 것이다.

유형별로는 치료재료비 과다 징수가 29억8000만원(46.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의약품비 12억원(18.7%), 검사료 10억원(15.8%). 선택진료비 5억4600만원(8.5%) 순으로 과다 징수가 적발됐다. 보건복지부는 부당청구 금액이 급여 총액의 0.5% 이상인 4개 상급종합병원에 대해 6억∼43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