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노인과 집 없는 청춘의 ‘특별한 동거’
입력 2013-10-08 04:40 수정 2013-10-07 08:06
윤덕순(80)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10년째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지냈다. 잠깐 외출했다가 돌아온 집은 늘 썰렁했다. 3명의 자녀는 직장을 찾아 전국 각지로 흩어져 왕래도 별로 없다. 전구가 나가도 교체하는 법을 몰라 그냥 둬야 했고. 한밤중 조그만 소리가 나도 강도가 들었을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윤씨는 “일주일 내내 TV만 보고 말 한마디 안 한 적도 있다”며 “이야기할 사람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그랬던 윤씨에게 8월부터 든든한 손자가 생겼다. 노원구청에서 진행한 ‘룸셰어링(Room Sharing)’을 통해 만난 대학생 김정도(26)씨다. 룸셰어링은 외로운 노인과 학교 주변에 살 곳이 마땅찮은 대학생이 함께 사는 주거공유 프로그램이다. 전남 무안 출신으로 서울과학기술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지난 8월 학교 기숙사에 붙어 있던 공고를 보고 구청에 룸셰어링을 지원했다. 졸업을 앞둔 터라 기숙사를 떠나 살 집을 구해야 했던 김씨에게 40만∼50만원이나 하는 학교 주변 월세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면접을 겸해 집에 찾아온 김씨를 보고 윤씨는 “인상이 참 선해 보였다”고 회상했다. 3일 후 그들은 한 식구가 됐다.
80대 노인과 20대 젊은이의 동거 한 달 반째. 윤씨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병원에 갈 때마다 김씨가 윤씨를 부축해 말동무가 되어 준다. 홀로 식사를 할 때 김치에 맨밥만 먹던 윤씨는 이제 김씨를 위해 반찬을 만들고 과일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자물쇠가 고장 나고 전구가 나가도 김씨가 손봐주니 안심이 된다. 김씨도 마음이 편하다. 매달 생활비와 전기료·수도세 등을 합쳐 20만원만 내면 되니 경제적 부담도 적다. 엔지니어가 꿈인 김씨는 “할머니가 엄마처럼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다”며 “정해진 기간은 6개월이지만 기회가 되면 더 연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노원구 내 대학에 다니는 학생 13명이 룸셰어링을 통해 어르신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구청은 65세 이상이면서 61㎡ 이상의 주택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집을 미리 방문해 대상자를 물색했다. 학생이 입주할 경우 방의 도배와 장판을 지원한다. 구청 관계자는 “입소문이 나면서 대학생의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25만명에 달한다. 반면 전국 4년제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2010년 16.4%에서 2012년 15.6%로 하락했다. 대학생 주거 문제와 ‘황혼 우울증’을 해결하는 데 룸셰어링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한 대학생은 서울시가 진행하는 룸셰어링에 지원해 이사했다가 사흘 만에 쫓겨났다. 집주인은 학생이 집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이불도 주지 않았다. 청년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공동체인 민달팽이유니온 권지웅 대표는 “정부 차원에서 집주인과 학생의 요구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파악해 양측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