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APEC 정상회의 강행군…시진핑과 ‘화기애애’, 아베와는 “…”
입력 2013-10-08 00:48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7일 만남은 시작부터 아주 화기애애했다. 올 들어서만 세 번째 만남이라서 그런지 박 대통령의 6월 중국 방문 때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였다.
박 대통령의 숙소인 아요디아 리조트 호텔을 직접 찾아온 시 주석은 짙은 회색 양복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박 대통령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읊조렸던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천리 밖까지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한 층을 더 오른다)’를 인용했다. 한시(漢詩) 한 대목이 두 정상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시 주석은 우리 정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하게”나 “결연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북한의 핵 보유 반대 입장을 강력히 천명했다.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 때의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가 양국의 공동 이익”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강도가 높고 직접적인 형태였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2094호를 철저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단언한 대목도 단연 눈에 띄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 지도자 가운데 이처럼 강력하게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의를 표시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은 이밖에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체결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지역 및 국제 정세, 정치·경제 및 인적 교류 등 모든 현안을 대화 테이블에서 술술 풀어냈다. 45분 동안의 짧은 회담이었지만 서로 막힘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 셈이다. 연내에 전략적 대화 채널을 가동하자거나 외교안보 대화를 위한 국책연구소 간 교류까지 서로 의견일치를 보기도 했다.
시 주석은 “정치·경제·국민 간의 교류, 심지어 국회 간의 교류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양국 관계가 증진돼 정치적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발언도 했다. 지난 6월 중국 방문 때는 박 대통령이 주로 대화를 주도했다면 이번엔 시 주석이 더 적극적이었다.
양국 정상은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회담에 배석했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일본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유엔총회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의 과거 잘못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한 것에 대한 한·중 정상의 공통된 감정이 잘 드러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어진 APEC 세션1 회의장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앉은 아베 총리와 회의 시작 전 ‘매우 의례적인’ 인사만 나눈 채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시 주석과는 서로 자리를 오고가며 친근함을 과시했고, 다른 참가국 정상들과도 격의 없이 환담한 것과 대조적이다.
발리(인도네시아)=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