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나와, 바꿔” “텐”… 강풍 이겼지만 뇌출혈로 쓰러진 신현종 감독

입력 2013-10-08 04:48

지난 4일(현지시간)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2013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여자 컴파운드 단체 8강전. 강풍 때문에 0점 실수가 쏟아지며 한발 한발 극도록 초조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 때 신현종(53) 컴파운드 감독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가 보물처럼 여기는 수첩에는 숨이 멎을 듯 긴장된 경기 상황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당시 한국과 프랑스는 강풍 때문에 0점을 각각 4차례, 5차례나 기록하며 고전했다. 수첩에는 최보민(청원군청)이 0점 한 발, 석지현(현대모비스)이 7점 한 발, 서정희(하이트진로)가 10점, 8점을 두 발을 쏜 사실까지만 기록돼 있다. 발사 순서는 최보민, 석지현, 서정희였다. 그런데 왜 서정희가 두 발을 미리 쐈을까. 의문은 선수들의 경기 복기를 통해 금방 풀렸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사대에 나가 두 발씩을 쏘고 돌아오도록 지시했다. 한 발씩 돌아가면서 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길어지는 조준시간을 줄여 제한시간 초과에 따른 0점을 피하려는 궁여지책이었다. 첫 궁사인 최보민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0점을 쏜 뒤 다음 발사를 주저했다.



“나와. 바꿔!” 신 감독은 전략을 급히 수정해 최보민 대신 석지현을 투입했다. 이어 석지현은 첫발을 7점에 꽂았으나 두 번째 발에선 시위를 놓지 못했다. 다시 “나와. 바꿔!”라는 신감독의 말이 떨어졌다. 급히 사대에 들어선 서정희는 다행히 10점, 8점 두 발을 모두 쏘았다. 이어 한숨 돌리고 돌아온 최보민이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았다. “텐!” 우렁찬 신 감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신 감독은 그 순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수첩에는 최보민의 10점 기록을 쓰다 만 흔적이 안타깝게 남아 있다.



신 감독은 병원에서 잠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경기를 하러 가야 하니 병상에서 몸을 풀어 달라”고 요구했다. 대한양궁협회는 신 감독이 7일 안탈리아의 뇌전문 병원에서 3시간 정도 걸린 뇌출혈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터키 의료진은 신 감독이 수술 후에 완쾌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궁은 활의 형태에 따라 리커브와 컴파운드로 분류된다. 컴파운드는 활 날개 양쪽 끝에 도르레가 장착된 활을 사용하는 양궁경기다. 신 감독은 한국 컴파운드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 지도자다. 그는 그동안 컴파운드를 전국체전에 진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지 못하는 우수 선수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국내에서 취업하지 못해 해외로 유출되는 우수 지도자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한국 여자 컴파운드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예선을 1위로 통과했으나 본선 때 불어 닥친 거센 바람에 고전하다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한국은 6일 막을 내린 이번 대회에서 리커브 부문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71개 출전국 중에 종합 1위에 올랐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