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길성] 한류, 소프트 파워, 그리고 공공외교

입력 2013-10-07 17:40


“공감과 동반을 향한 이 시대의 지구적 과제가 한류를 통해 이뤄졌으면…”

2010년 19위, 2011년 14위, 2012년 11위. 영국에서 발간되고 전 세계 80여개국에 판매되는, 트렌디한 잡지로 정평이 나 있는 모노클(Monocle)이 발표한 한국의 소프트 파워 순위다. 2년 사이에 무려 8단계가 올랐다. 근자에 한국에 관한 국제적 지위가 이보다 더 가파른 순위 상승을 보여준 지표도 없을 듯하다. 다른 것도 아닌 소프트 파워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소프트 파워란 아주 쉽게 표현하면 한 국가의 매력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힘이며, 마음을 얻어내는 동력이다. 군사력, 경제력으로 행사하는 하드 파워와 달리 소프트 파워는 외교, 문화, 교육, 스포츠 등을 통해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량을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이 점점 더해지고 있다. 종속과 제국으로 점철된 오랜 질곡의 역사를 넘어서는 단초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후의 외교는 공감과 동반을 향한 소프트 파워에 근간을 둔 공공외교의 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각 나라의 매력, 다시 말해 소프트 파워를 구성하는 핵심 콘텐츠도 나라마다 매우 다양하다. 2012년 조사에서는 영국이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런던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22개의 음반이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대중음악이 영국을 2012년 소프트 파워 최고 국가로 등극시켰다. 미국은 리더십과 기후변화 대응, 독일은 학문과 축구, 프랑스는 미술관과 음식, 스웨덴은 실용성과 기능성이 소프트 파워의 핵심 콘텐츠로 꼽혔다. 한국의 매력을 보여주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 콘텐츠로 모노클 잡지는 K팝을 지목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이고 공감적인 관심의 한가운데에 한류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절반은 순교자이고 또 절반은 난민으로 여기는 팔레스타인에서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한국 드라마는 내 마음을 가득 메웠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는 방식을 배웠다. 그리고 한국의 대중음악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으며, 세련된 모습으로 함께 작품을 만드는 가수들의 모습에 가까이 가면서 한국에 대한 열병을 앓게 되었다. 나에게 한국은 세계 지도 위에 있는 어느 한 국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즐겨 보는 드라마를 훨씬 넘어선 존재다. 그것은 내가 느끼는 정신이고 채우고 싶은 열정이다.”

세계한류학회가 주최하는 한류 에세이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19세 팔레스타인 여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척박한 환경에서 한류는 자신에게 열정이고 삶의 새로운 동력으로 다가왔다는 고백이다.

그런가 하면 이렇다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매우 한정된 청소년들이 방과 후 K팝 모임을 만들고 함께 집단 군무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고 지방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선 사례도 있다. 함께 즐기면서 함께 만들어내는 협력을 알게 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다 보니 일탈 행동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한류는 생활의 활력이자 사회자본인 셈이다. 중남미에서 전통적 반미 국가로 알려진 볼리비아의 이야기다.

이렇듯 한류에는 세계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메시지가 여럿 있다. 평화의 메시지, 공동체의 메시지, 역동의 메시지, 사회자본의 메시지, 융합의 메시지, 대안의 메시지, 희망의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이제 한류를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을 담아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류가 다른 나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공외교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다. 외교부도 한류를 공공외교를 견인하는 중심축의 하나로 설정하고 몇 년 전부터 매우 심도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음을 얻는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공감과 동반을 향한 이 시대의 지구적 과제가 한류를 통해 구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