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 라기스 한국팀과 발굴 나서는 요시 가르핑켈 교수

입력 2013-10-07 17:04 수정 2013-10-08 16:40


“다윗왕 궁전터 최근 처음으로 찾아내”

성서고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시 가르핑켈(Yosef Garfinkel·57) 히브리대 고고학과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도시국가 중 하나인 텔 라기스(Tel Lakhish) 발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다. 가르핑켈 교수가 이끄는 국제 발굴단은 내년부터 5년간 텔 라기스 지역을 발굴할 계획이다.

지난 2일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에서 만난 가르핑켈 교수는 성서고고학의 중요성부터 설명했다. 그는 “땅에서 나온 유물들은 더하거나 빠짐없이 그 시대를 대변한다”며 “고고학은 성경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윗과 솔로몬이 역사적으로 실재한 인물인지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들어 이를 설명했다.

가르핑켈 교수는 “약 30년 전 최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성경에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었다”며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도 신화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랫동안 다윗과 솔로몬 시대 도시의 지층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과 솔로몬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학자들 사이에 퍼져갔다. 그러나 1993년 북이스라엘 텔단 지역에서 주전 9세기 다윗 왕조를 언급한 아람어 비문이 발견됨으로써 다윗 이야기가 신화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논란이 일었다. 어떤 학자들은 다윗이 ‘족장’ 수준의 인물일 뿐 왕국도 없었고, 요새화된 성읍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르핑켈 교수가 2007년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를 발굴하면서 논쟁의 추는 반대 측으로 기운다. 키르벳 케이야파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32㎞ 떨어진 엘라 골짜기 북쪽 능선 위 해발 328m에 위치한 지역이다.

가르핑켈 교수는 “케이야파에서 주전 10세기 초, 통일왕국 시대 성문과 성벽을 가진 도시를 발견했다”면서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유다의 문화를 시사하고 있으며, 다윗 시대와 일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토기에 대해 방사성 탄소연대(C14) 측정을 실시한 결과 주전 10세기에서 9세기 사이 유물로 밝혀졌고, 이 시기는 성서에 나오는 다윗 왕조의 황금기와 동일한 시대”라며 “토기조각에 쓰인 몇몇 문자를 해석한 결과 ‘심판하다’ ‘종’ ‘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다윗왕 궁전터를 처음으로 찾아냈다”며 “다윗왕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유대인이 사용한 제례용품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발굴된 15m의 저장고는 왕국 각지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물품을 보관하는 왕실 창고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가르핑켈 교수는 “다윗왕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예루살렘의 모처에 상주하면서 키르벳 케이야파와 다른 궁전을 잠깐씩 방문했을 것”이라며 “언덕 위에 키르벳 케이야파를 지은 것은 도시국가 사이에 전쟁이 빈번히 일어났던 시기 통치자가 높은 지대에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가르핑켈 교수는 올해를 끝으로 키르벳 케이야파 발굴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5년간 텔 라기스 발굴에 나선다. 그는 “텔 라기스는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도시국가 중 하나로 구약에 24번(여호수아 10장, 역대하 11장 등) 언급됐다”며 “천연요새인 예루살렘을 침공하려는 적들이 단골로 이용했던 우회 침공 루트의 초입에 위치해 있어 많은 전투를 겪었던 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열왕기하 18장 14절에 보면 히스기야 시대 북이스라엘을 침략한 산헤립의 경우 46개 도시를 파괴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전 라기스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을 협박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르핑켈 교수는 “이 지역은 8개의 지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전 15세기(8지층)부터 주전 3세기 헬라시대(1지층)까지의 유물이 골고루 묻혀 있다”고 말했다.

사막 기후인 이스라엘에서는 일단 물이 있는 곳에 도시를 조성하면 그 마을이 전쟁 등의 이유로 파괴돼도 이전 도시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또 다시 도시를 조성해 왔다. 이처럼 지층이 형성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형을 ‘텔’이라고 부른다. 텔 라기스도 후기 청동기 시대부터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시대까지 모두 8개의 지층으로 구성돼 있다.

텔 라기스 지역 발굴 작업은 1930년대부터 미국, 이스라엘 등이 시작했으며 이번 가르핑켈 교수가 주도하는 발굴작업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한다. 한국 발굴팀이 담당하는 지역은 텔 라기스의 다섯 번째 지층인 주전 10세기 도시 부분이다.

한국 발굴팀장 홍순화(서울장신대) 교수는 “지난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텔 라기스를 방문해 사전 답사를 마쳤다”며 “답사를 하면서 발굴 지역에 주전 10세기에 사용했던 수로시설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발굴을 통해 유다왕국 초기 200년의 공백을 채울 흔적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르핑켈 교수는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와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의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고 이스라엘 이프타엘, 텔 알리 등 지역을 발굴해 12권이 넘는 보고서와 책을 냈다. 그의 전공은 ‘선사시대’였지만 2007년 히브리대 고고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성서시대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