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투쟁 근거지는 ‘움막’

입력 2013-10-06 19:02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재개 닷새째 날인 6일 단장면 단장리 4공구 공사현장 움막 앞. 공사 반대 주민들이 농사일에 동원되던 트럭 주변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간간히 흩날리는 가운데 수확기 농사일을 포기하고 공사반대에 나선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움막 안에서 젖은 수건을 말리던 한정숙(88) 할머니는 “평생 살아온 터전을 지키려니 힘에 부친다”고 한숨지었다. 반대 주민들에게 움막은 경찰과 한전을 상대로 한 힘겨운 투쟁의 근거지다.

반대 주민들은 단장면 고례리 헬기장에 1개, 단장리 4공구 자재 야적장에 1개, 부북면 위양리 위양마을 입구·127번·129번 현장 등지에 4개 등 총 6개의 움막을 설치했다. 지난 추석 직전에 만든 127번 현장 움막 외에 모두 지난해에 세웠다.

주민 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10여㎡ 규모의 이 움막에는 이불, 휴대용 가스버너, 믹스 커피, 컵라면, 생수, 난방용 휘발유 등이 준비돼 있다. 일부 움막 안에는 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치면 구덩이로 들어가 묻혀버리겠다는 것이다. 움막 밖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한 연탄보일러가 설치돼 있다.

한전과 밀양시는 송전탑 공사 재개 시점에 맞춰 움막 철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고례리의 움막은 공사 첫 날인 지난 2일 오전 20여분만에 철거됐다. 그러나 나머지 움막 철거를 둘러싸고 반대 주민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장기순(81) 할머니는 “송전탑 건설부지 아래 밭을 갖고 있는데 땅이 좋아 각종 채소를 심어 객지에 있는 아들·딸에게 보내줬다”면서 “하지만 이제 고압선 때문에 농사도 못 짓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헐값에 빼앗기게 됐다”고 토로했다.

송전탑 공사를 서둘러야 하는 한전과 반대 시위자들의 집결을 막아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 보면 움막이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그러나 주민들 입장에서는 움막이 없으면 사실상 노숙에 가까운 농성을 해야 한다. 70∼90대 노인들이 갈수록 쌀쌀해지는 날씨 속에서 농성을 계속하기 어려워진다.

밀양=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