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상품에 바가지… ‘사후면세점’ 한류 먹칠

입력 2013-10-07 05:10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한국 여행을 온 위첸닝(42·여)씨 손에는 홍삼 엑기스 5상자가 들려 있었다. 가족건강을 위해 공들여 선택한 선물이다. 위씨는 “한국 돈으로 1상자에 11만8000원 주고 구매했다”며 “정가가 17만원에 이르는 제품이라는데 싸게 샀다”고 좋아했다.

위씨는 5일 여행사에서 알려준 곳에서 여러 물건을 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동에서 ‘Duty free(면세)’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곳이다.

잠시 후 해당 매장에 손님인 척하고 기자가 들어갔다. ‘외국인 친구 부탁으로 왔다’며 위씨가 샀다는 240g 홍삼 엑기스 1박스 가격을 물었다. 직원은 6만원을 불렀다. 매장 직원은 위씨가 구매한 제품을 슬그머니 뒤로 치우더니 ‘신뢰할 만한 제품’이라며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 제품을 소개했다.

이처럼 일부 사후면세점이 ‘면세점’이란 이름을 앞세워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고 있다. ‘관광 한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여행사와 계약을 맺은 일부 사후면세점들이 질 낮은 제품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팔고 있다. 이들은 여행사에 약 50% 수준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는 현재 2가지 유형의 면세점이 있다. 관세청의 보세판매 특허권을 받은 보세판매장(사전면세점)과 국세청 관리를 받는 사후면세점이다. 보세판매장은 흔히 알고 있는 면세점이다. 관세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다. 보세판매장에서는 관세,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가 모두 면제되는 상품을 판매한다. 공항 출국장 면세점 20개, 시내 면세점 13개 등 30여개 보세판매장이 운영 중이다.

반면 사후면세점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부가세와 개별소비세만 면제해 준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화장품 전문점 등이 사후면세점으로 지정돼 있다. 외국인들은 사후면세점에서 물건을 산 뒤 3개월 이내 출국할 경우 출국장에서 물품가격에 포함된 부가세나 개별소비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사후면세점은 보세판매장과 달리 지역 관할세무서에 신청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국에 5400여개 매장이 있다.

문제는 사후면세점 중 일부가 여행사와 리베이트를 주고받으며 진짜 보세판매장인 것처럼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은 “면세라는 간판이 걸려 있으면 그곳에서 파는 물건을 믿게 된다”면서 “한류스타 사진까지 붙여 놓았길래 들어왔더니 TV와 잡지에서 본 적 없는 화장품들만 비싼 가격에 소개하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황이 이렇지만 현행법상 사후면세점은 관세법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탈세가 아닌 이상 면세점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해도 관할세무서에서 손을 쓸 방도가 없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피해를 입는 것에서 나아가 관광 한국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