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한국 정치, 너무 드라마틱하다”

입력 2013-10-06 17:54


한국에 관심이 있는 외국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만큼 정치가 드라마틱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어제는 멀쩡히 그냥 넘어가다가 다음 날엔 여야가 서로 잡아먹을 듯이 혈투를 벌인다. 갑자기 생겨난 작은 일 하나가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즘 한창 가을야구 시즌에 돌입한 메이저리그 게임으로 치면 고요한 투수의 게임이 아니라 1회부터 9회까지 단 한 회도 조용한 이닝이 없는 엎치락뒤치락 타격전인 셈이다.

지난 8월 초까지 비교적 조용하던 여의도 정치판에서 요즘 터진 굵직굵직한 일들만 꼽아봐도 이 같은 우리나라 정치의 특징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소동에다 박근혜정부 핵심 장관이었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 파동, 노무현정부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삭제와 봉하마을 유출 등을 놓고 여야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탓을 하며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2월 말 새 정부가 들어섰고, 3월부터 야당은 단 한 번도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한 적이 없었다.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고위직 장·차관급 인사들의 낙마 사태가 잇따르더니 야당의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의혹 제기가 선풍을 일으켰고, 급기야 야당은 국회를 버리고 길거리 투쟁에 나서기까지 했다. 야당이 되돌아오자 새 정부의 복지공약 후퇴 논란이 벌어졌고, 지난해 대선 민주당 주자였던 문재인 의원과 친노(친노무현) 세력에게는 치명타가 될 만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삭제 파문이 또 일어났다. TV 드라마도 이 정도면 거의 ‘막장’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급변에 또 급변인 셈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이런 정치에 익숙해져 있어 새롭게 여기지도 않는다. 사람은 너무 심한 긴장이 연속되면 특유의 유전적 방어기제를 동원한다고 한다. 긴장을 긴장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평시’ 상태인 양 인식해 심한 스트레스를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정치를 국민들이 “다들 저러다 말겠지”하고 무심히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이런 방어기제 작동으로 보인다.

참 중요한 일들이 여의도 정치판에서 벌어지고는 있는데, 아무것도 해결되는 건 없어 보인다. 새 정부가 약속했던 민생입법은 전형적인 여야 간 싸움에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한동안 실종될 것 같다. 어떤 싸움이든 결론이 나기 마련인데 우리 정치세력들 간의 다툼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날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정치란 단어는 한자로 풀이하면 뭔가를 ‘정(政)’하고, 이 정해진 것에 따라 여러 세력을 다스린다(치·治)는 뜻이다. 한번 되돌아보자, 우리 정치가 이 뜻에 맞는지를. 국민의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 관심사의 제도적 표현인 입법 사안들을 어떻게 정할지 먼저 결정하는 게 본연의 의무다. 그런데 이 ‘선량(選良)’들은 올해 국회에서 ‘정’해놓은 게 별로 없다. 이유는 서로를 공격하는 데에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법들이 정해지지 않으니 정부는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다. 그 사이에 민초들의 생활과 일상은 발전하는 게 거의 없다. 경제가 어렵고, 민생이 어렵다는 걸 누구나 다 아는데 그런 것들 좀 챙겨달라고 뽑아놓은 정치인들은 제 구실을 못 하는 형국이다.

한국 정치가 드라마틱하다는 외국인들 말을 곱씹어보면 ‘드라마틱한 한국 정치는 아직 진짜 정치가 아니다’는 뜻은 아닐까.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