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입력 2013-10-06 17:20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는 1971년 프랑스 작가 드니 디드로(1713∼1784)의 희곡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민음사 번역 출간)을 같은 제목의 희곡으로 다시 쓴다. 쿤데라는 자신의 이런 글쓰기를 두고 “그 고유의 디드로에 대한 변주이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디드로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밝혔다.
쿤데라가 “오늘날 내가 보기에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이 빠진 소설의 역사는 이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완전해질 것이다”라고 극찬한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자크라는 주인공이 가장 프랑스적인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었는가?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을 안단 말인가?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가?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크는 그의 전 주인인 대위가 ‘여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고 나쁜 일은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도입부)
하인 자크와 그의 주인은 말을 타고 목적지도, 이유도 모르는 채 여행을 한다. 주인은 여행의 무료함과 피로를 달래기 위해 자크에게 이야기를 요청하고 자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버지에게 맞고선 홧김에 지나가던 부대에 자원입대해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근처 초가에서 상처를 치료하던 일 등을 장황하게 털어놓는 자크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고물상 자종의 손자로, 12년 동안 할아버지가 입마개를 물고 다니게 했을 때의 억압과 구속을 보상받기 위해 열광적인 수다쟁이가 되었다. 이에 비하면 주인은 시계나 들여다보고 코담배를 마시고 자크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나태한 인물이다.
두 인물은 누가 봐도 지배와 피지배라는 주종관계로 맺어져 있지만 결국 자크가 주인에게 그 주종관계를 깨트리는 서약을 명문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성향과 자유의지를 실천하기에 이른다. ‘말하는 자유’를 통해 주인 곁에서 자유를 실행하는 자크야말로 오늘날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인 셈이다. 볼테르, 루소와 더불어 계몽주의 철학자의 대명사로 군림한 디드로의 문학적 정수를 맛볼 수 있다. 김희영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