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곽희문 (6) 유치원 개원의 첫번째 과제 ‘불신의 벽을 깨라’
입력 2013-10-06 17:24
엘토토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파리떼를 쫓고 쥐구멍을 막고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하니 제법 번듯한 모습을 갖췄다. 어린이를 모집하는 데 유치원비를 받아야 하나 안 받아야 하나 고민됐다. 그러나 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 보육비로 20실링(300원)을 받기로 했다. 간식비도 안 되는 돈이었다.
아이를 모으는 일이 남았다. 엄마들이 쓰레기를 줍는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생긴다면 모두들 좋아할 것이라 판단했다. 나는 마을 반장 아주머니에게 엘토토 취지를 설명하고 유치원생을 모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반응이 시큰둥했다. 알았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 애가 탄 내가 또 찾아갔다.
“엄마들이 당신을 믿을 수 없대요. 우선 유치원비가 너무 싼 것이 수상하고 애들 사진만 잔뜩 찍고 도움을 요청해 당신 배만 불리게 해주는 것 아니냐고 그러네.”
이들은 그런 경험을 당한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애들이 마음만 다치고 유치원이 흐지부지 문 닫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선교사이고 그러지 않는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나는 엄마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했다. 그들이 사는 동네이름은 ‘덤핑사이트’로 불렸다. 이곳은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무장경찰들도 무서워하는 곳이었다. 나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작정 이곳으로 들어갔다.
“여러분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엘토토유치원은 절대 여러분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후원자도 지금 가진 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라고 시키니 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좋은 대학까지 가게 해 훌륭한 삶을 살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한다고 진실한 표정과 목소리로 호소했다.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던 입시학원 선생이었다고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웅변하듯 엄마들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유치원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다음날 반장 아주머니는 유치원을 방문해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물은 뒤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정확히 일주일 뒤 엘토토는 33명의 어린이를 받아 정식으로 개교할 수 있었다. 2009년 9월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를 했고 그 말에 그들이 순종하고 따라온 것이라 여긴다. 엘토토의 아침은 활기차게 시작된다. 쓰레기 악취가 진동을 하고 먼지가 날려 환경은 엉망이지만 환한 얼굴의 어린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7시 반이면 유치원에 나타난다. 나는 3∼4세 베이비반, 5∼6세 유아반, 7세 유치반으로 세 클래스를 만들었다. 각 반을 현지 전문교사를 채용해 맡기고 교육과정은 우리가 짰다. 이때를 위해 하나님은 오래전에 우리 부부에게 학원을 운영케 하셨으니 대차대조표가 정확한 하나님이셨다.
아침기도회 시간과 점심식사 시간에 어린이들은 기도하기 위해 모두 고사리 같은 손을 모은다. 우리 부부는 이 어린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얼굴도 천진하고 예뻤지만 우리에게 착착 감기며 좋아는 것에 보람과 기쁨이 솟아났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소통이 끊긴다. 우리는 아침마다 어린이들과 수십 번의 뽀뽀와 포옹을 하며 사랑을 확인했다. 내가 없는 날은 나를 찾으며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난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다. 한국에 안 돌아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그것을 넘어서야 더 큰 상급이 있는 것이 신앙의 법칙인 것 같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