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내우외환’-시진핑 ‘어부지리’… ‘셧다운’ 명암 엇갈린 G2

입력 2013-10-04 18:33

G2(주요 2개국) 수장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사태로 외교일정까지 차질을 빚으며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사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어부지리로 동북아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가고 있다.

◇오바마 아시아 순방 모두 취소=미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밤늦게 성명을 내고 “7∼8일 인도네시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9∼10일 브루나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전날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순방을 취소했다. 셧다운 사태로 아시아 순방 전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특히 APEC 정상회의는 매년 참석해 왔는데 이례적으로 불참을 결정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줄곧 아시아 중시 외교를 강조해 왔다. 빠르게 성장 중인 아시아와 손잡겠다는 전략이지만 그보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 순방은 걸핏하면 후순위로 밀렸다. APEC 정상회의 등 주요 행사는 챙겼지만 정작 아시아국 공식 방문은 거의 없었다. 2010년 3월에도 아시아 순방을 발표했다가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안)’ 문제로 연기했고, 4개월 뒤엔 멕시코 걸프만 기름유출 사고를 빌미로 취소했다. 이번까지 아시아 순방이 세 번째 취소되자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빈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백악관은 “셧다운 사태를 금주 안에 매듭짓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셧다운 사흘째인 이날도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존 베이너(공화당) 하원 의장이 “연방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만큼은 막기로 결심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지만, 오바마케어 시행 연기를 포함한 잠정예산안 처리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접점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셧다운 장기화 조짐으로 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전 세계 경제 수장들의 경고도 잇따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연설에서 “셧다운 상황도 좋지 않지만 17일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에 실패한다면 미국 경제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중대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일 셧다운 사태가 겨우 회복 국면에 들어선 유럽경제에 찬물을 끼얹을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불안심리가 퍼지며 글로벌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보였다.

◇시진핑 아시아 외교공세 강화=오바마 대통령이 없는 APEC 정상회의는 시진핑 주석의 독무대가 될 전망이다. 앞서 3일 인도네시아에 가서 외국정상 처음으로 국회 연설을 통해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제안한 시진핑은 4일 말레이시아를 방문, 나집 라작 총리와 회담했다. 7∼8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귀국하면 이번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동남아 끌어안기에 나선다. 그는 9∼10일 브루나이 ESA에 참석한 뒤 태국,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아시아 국장이었던 미셸 그린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셧다운 사태를 조기 수습하지 못하면 리더십에 상처를 입는 건 물론 아시아도 잃게 될 것”이라며 “경쟁자인 중국은 반대급부로 아시아 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현재까지 셧다운으로 중국이 승자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