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땅 코앞에서… 아프리카 난민 선박 침몰 310여명 사망·실종 참극

입력 2013-10-04 18:33 수정 2013-10-04 22:59

리비아 미스라타항을 떠난 지 3일째인 3일 오후(현지시간)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 800m 앞 해역.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에리트레아와 가나, 소말리아 출신 불법이민자 450~500명이 유럽행에 대한 부푼 꿈을 갖고 승선해 있었다. 탑승자 중에는 임산부와 어린이도 다수 있었다.

파도가 잠잠해지는 9~10월에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을 태운 배가 거의 매일 이탈리아 해안에 도착한다. 람페두사섬은 이탈리아 영토지만 튀니지로부터 불과 113㎞ 떨어져 있어 북아프리카가 더 가까운 곳이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은 배는 기관고장을 일으켰다. 배에 물까지 들어차자 일부 탑승객이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해 배에 불을 피웠다. 배에 불을 피운 것은 재앙으로 변했다. 불이 배 전체로 번지자 탑승객이 안전한 쪽으로 몰려 배가 기울면서 그대로 전복된 것. 배는 순식간에 지중해의 40m 바닥으로 모습을 감췄다.

해안경비대가 구조 활동에 나서 155명을 구조했다. 113명의 시신도 수습했다. 하지만 200명이 넘는 사람이 여전히 실종된 상태로 100명은 가라앉은 배안에 있는 것으로 구조당국은 추정했다. 이 때문에 사망자수는 300명이 넘을 것으로 이탈리아 언론은 전망했다.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최악의 해양 사고다. 사고해역의 높은 파도로 구조 활동은 일시 중단됐다.

이탈리아 당국은 구조자 중 선장인 튀니지 출신 남성(35)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그는 지난 4월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인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4일을 국가애도의 날로 선포하고 이탈리아 전체 학교에서 1분간 묵념을 했다. 엔리코 레타 총리도 트위터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라며 애도를 나타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즉위명으로 선택한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나 활동한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오늘은 통곡의 날”이라며 “수많은 사람이 노예상태와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쳐야 하는 사실에 무관심하다”며 현실을 개탄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해 약 500명의 난민이나 이주민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오려다 익사하거나 실종됐다고 밝혔다. 특히 10년간 시칠리아에서만 6707명이 숨졌다고 BBC는 전했다.

올 들어 지난달 30일까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수는 3만100명이며 상당수가 시리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최고대표는 지역 분쟁과 박해를 피해 도망 나온 난민이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상당수가 바다에서 생명을 잃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