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력 밀양 몰리면서 갈등 증폭… 송전탑 공사 현장서 경찰과 수차례 충돌

입력 2013-10-04 18:26

경남 밀양의 한국전력공사 송전탑 공사 현장에 사회단체 등 외부 지원세력이 늘어나면서 투쟁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과 주민, 사회단체 회원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4일 밀양시 단장면 송전탑 자재 야적장과 움막에서는 주민과 환경·반핵단체 회원 100여명과 경찰 300여명이 수차례 충돌했다. 5일에는 ‘탈핵 희망버스’ 2대가 추가로 합류할 예정이다.

외부 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주민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인근 바드리 마을에서는 목에 쇠사슬을 묶은 할머니 5명이 여자 경찰관과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2명이 부상해 응급차에 실려 갔다.

주민 김모(56·상동면)씨는 “도대체 평생 농사만 지어온 노인들이 어떻게 공사예정지에 움막을 짓거나 인간 쇠사슬을 만들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며 “모두가 전문 훼방꾼인 외부 세력의 선동 탓”이라고 말했다.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활동하는 외부 단체 인사들은 120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지역별로 인원을 분산 배치해 할머니들과 함께 인간쇠사슬을 만들어 움막을 지키는가 하면 철거 공무원들에 맞서 몸싸움도 벌였다. 일부 인사들은 야적장에 드러눕기도 하고 철야농성을 위해 곳곳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장기 농성을 각오한 듯 개인별로 취사도구도 갖췄다.

부산에서 온 반핵단체 회원 이모(35·여)씨는 “고압선의 위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할머니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사람답게 사는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동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환경단체에서 왔다는 김모(44)씨는 “지역 주민들과 연대해 반드시 공사를 저지시킬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경찰은 송전탑 공사 자재 야적장 외벽을 부수고 진입한 환경단체와 반핵단체 회원 등 11명을 연행해 이 중 2∼3명에 대해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외부세력의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장익근 밀양시 의정회 회장 등 지역원로들은 시청 앞에서 호소문을 통해 “그동안 일부 정치권과 사회운동단체가 지역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주민 반목과 불화를 조성한 예가 있어 이들의 간섭 행위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찬성 측인 김상우 청도면 대책위원장은 “외부세력들이 왜 남의 동네에 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모르겠다”며 “더 이상 지역주민 간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외지인들은 모두 밀양에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외부 단체 인사들이 나서 검증되지도 않은 고압전류의 위험성을 부풀려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밀양 송전탑은 지역의 최대 환경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민 삶터의 존립 문제”라고 말했다. 강병기 통진당 경남도당위원장은 “주민의 (지원) 요청도 있지만 환경권 문제에 진보정당이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비폭력으로 주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외부 인사들의 노력을 왜곡하고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책사업이 사회단체의 개입으로 차질을 빚은 사례는 적지 않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경우 2007년 6월 사업이 확정됐지만 강정마을 주민과 외부 시민·사회·환경단체 등의 지속적인 ‘연대 투쟁’으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등 5년 넘게 표류했다. 결국 내년 12월 30일로 예정됐던 제주해군기지 완공은 2015년 12월 30일로 1년 더 연기됐다.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구간인 금정산∼천성산(26.3㎞) 터널구간 공사도 비슷한 갈등으로 한동안 표류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이 도롱뇽 등 자연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노선변경을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발해 2002년부터 공사가 차질을 빚었다. 단식투쟁과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등 갈등이 이어지면서 484일간 공사가 중단된 끝에 터널 굴착은 2007년 11월에야 완료됐고, 동대구에서 부산까지 고속철은 2010년 11월에야 개통됐다.

전북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건설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부안군이 2003년 7월 위도에 방폐장 유치를 선언하면서 불거진 갈등은 부안군민은 물론 외부 환경단체 등의 반발까지 겹치면서 1년 이상 표류했고,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낸 끝에 사업이 무산됐다. 결국 방폐장 대상지는 경북 경주로 바뀌었다.

밀양=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