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숙원 불가침조약… 케리 “비핵화 땐 체결 가능”

입력 2013-10-04 18:11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6자 회담국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정통성 있는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조약(non-aggression agreement)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고 말했다. 6자 회담 참가국은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가리킨다.

일본 도쿄에서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인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를 개최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다.

케리 장관의 발언은 일단 2005년 체결된 9·19공동성명 1항의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설 자세가 돼 있다는 신호를 연속으로 보내는 상황에서 북한의 숙원 요구 사항인 ‘불가침조약’을 언급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9·19성명에 ‘북한은 비핵화를 이행하고, 미국은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다’는 내용이 있긴 하다. 하지만 6자회담 과정에서 불가침조약은 두드러지게 공론화된 적이 없다.

케리 장관은 이어 “6자 회담국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한다면 북한의 정권 교체에 나서지 않을 것임도 분명히 해 왔다”고 언급했다.

2일 런던에서 열린 북한과 미국 간 민관 세미나에서 북한 측이 6자 회담 재개를 강력히 희망한 것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문제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근본적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당국자는 “원칙적인 얘기를 되풀이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최근 적극적인 대화공세에 나서고 이를 토대로 중국이 대화 압박에 나서는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의 대북제재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하순에는 대북 수출통제 품목 리스트까지 발표해 오바마 행정부를 고무시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미국의 ‘제재’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나선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대화’ 요구에 어느 정도 화답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함께 제재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에 불가침조약과 같은 확실한 ‘당근’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압박하는 쪽으로 전술을 바꿨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