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블릿 PC 전성시대] 한국에선 잡스도 울고 갈걸… 왜? 패블릿PC가 대세니까!
입력 2013-10-04 22:43 수정 2013-10-05 04:03
직장인 김지훈(30)씨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지만 거의 쓰지 않는다. 평소 IT 기기에 관심이 많은 김씨는 포스트PC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난해 말 아이패드를 마련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쓴 건 처음 사고 1주일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김씨는 “웬만한 건 다 스마트폰으로 하기 때문에 딱히 태블릿PC를 찾게 되지 않는다”면서 “중고로 처분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PC의 자리를 태블릿PC가 빠르게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 시장조사 기관 등에서는 ‘태블릿PC 전성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시장에서 태블릿PC는 찬밥신세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소비자만의 독특한 특징이 숨어 있다.
PC 다음은 태블릿PC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2010년 1월 27일 아이패드(iPad)를 공개한 뒤 태블릿PC는 포스트PC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잡스는 당시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소파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시연했다. 앞으로 거실에서는 컴퓨터 대신 태블릿PC가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잡스의 예측대로 아이패드는 세상에 나온 지 1년도 안되는 동안 1500만대가 팔리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들도 앞 다퉈 시장에 뛰어들면서 태블릿PC는 스마트 기기의 핵심 제품군으로 자리잡았다.
시장조사 기관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는 올해 세계 태블릿PC 출하량이 2억274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57.7%나 증가한 수치다. 2017년에는 4억700만대까지 늘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데스크톱과 노트북 등을 포함한 PC는 점차 줄면서 2015년에는 태블릿PC 출하량이 PC 전체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PC시대가 끝나는 것이다.
IDC 모바일 트래커의 프로그램 매니저인 라이언 리스는 “앞으로도 PC는 업무용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겠지만 많은 이용자들은 그동안 PC로 하던 많은 일을 태블릿PC로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예외…태블릿PC 대신 패블릿
태블릿PC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은 장밋빛이다. 그런데 우리 시장은 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블릿PC가 설 자리가 마땅히 없다. 가장 큰 이유는 큰 화면의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국내 이용자의 성향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소위 ‘패블릿(Phablet·스마트폰+태블릿PC)’으로 분류되는 5∼6인치 화면을 가진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를 내놓고 패블릿 시장을 개척할 때만 해도 ‘저렇게 큰 휴대전화가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밖이다. 거의 모든 스마트폰 화면이 5인치 이상이다. 애플 아이폰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대부분이 패블릿인 셈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 시리즈만 봐도 이런 특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면 크기가 4인치(갤럭시S)에서 4.3인치(갤럭시S2), 4.8인치(갤럭시S3)로 점점 커지더니 갤럭시S4는 5인치가 됐다. LG전자 G2나 팬택 베가아이언 등 업체별 최신 제품 중 가장 작은 화면 사이즈는 모두 5인치다.
화면이 큰 스마트폰인 패블릿을 쓰다보니 화면이 더 큰 태블릿PC의 필요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IDC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태블릿PC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10.1% 줄었다. 이에 비해 높은 사양에 큰 화면을 갖춘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매출이 20.7%나 늘었다. 한국IDC는 “태블릿PC는 사용 목적과 활용도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스마트폰과의 차별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T 업체에 근무하는 전경화(33·여)씨는 “가끔 집에서 웹툰을 보거나 동영상을 감상할 때 말고는 태블릿PC를 쓸 일이 없다”며 “무게도 여자가 항상 휴대하고 다니기에는 무거운 편이라 집에 모셔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씨는 “태블릿PC는 개인용 스마트 기기인데 들고 다니면서 쓰면 옆사람들이 볼 수 있어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 참가했던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들은 “해외 소비자들은 국내 소비자보다 패블릿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서양 사람들이 덩치도 크고 손도 커서 큰 스마트폰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3.5∼4인치 사이의 크기를 유지하고 있는 애플 아이폰을 ‘표준 규격’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보니 큰 화면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태블릿PC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외국에 비해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태블릿PC가 확산되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종이책 시장이 잠식될 것을 우려하는 탓에 출판사들이 전자책 출판을 꺼리면서 태블릿PC에 적합한 ‘킬러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태블릿PC는 ‘헝그리 어답터’의 급전 마련 도구?
자주 사용을 하지 않다보니 태블릿PC는 ‘헝그리 어답터(Hungry Adopter)’의 자금 마련용 중고 매물로 나오고 있다. 헝그리 어답터는 IT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신제품이 나오는 즉시 제품을 구입한다는 점에서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와 비슷하다. 다만 헝그리 어답터는 가지고 있는 제품을 중고로 처분해 자금을 마련, 새 제품을 산다는 차이가 있다. 애착이 있는 기기를 중고로 내놓는데 망설이게 마련이지만 용도가 애매한 태블릿PC는 ‘방출 1순위’에 자주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뚜렷한 활용 목적 없이 일단 사고 보자란 심정으로 태블릿PC를 구입했다가 몇 달 만에 중고로 처분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올 3분기 판매된 중고 디지털 제품 가운데 태블릿PC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다. 그만큼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는 의미다. ‘중고나라’나 ‘뽐뿌’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미개봉 신품’, ‘사용 횟수 1회 거의 새 제품’ 등의 문구를 앞세워 태블릿PC를 팔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