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청소년이 맞는 면역 주사
입력 2013-10-04 17:02
그 무섭다는 중딩과 고딩이 우리집을 방문했다. 나는 내심 긴장했다. 좋은 교훈 한 마디를 아이들에게 해줄 것을 부모들이 부탁했기 때문이다.
조금 익숙해지자 아이들은 슬슬 자신들의 학교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학교에 상담교사가 있어도 안 간다고 했다. 이유는 상담일지에라도 적혔다가는 대학 진학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내놓은 방안이 뽑힌 학생이 친구나 하급생을 상담해 주는 제도인데 그것 역시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어쩌다 상담 해 오는 학생이 있어서도 학교에서는 교육청 같은 데 보고하지 않고 없는 일로 덮어 버리기에 급급하다고 했다. 어른들의 불합리성까지 눈치챈 것 같았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가자 고딩이 불쑥 한 마디 했다. “우리는요, 약간 미친 척해야 정말 미치지 않아요.”
진학에 관한 스트레스 등 너무 힘든 상황을 벗어나는 방편으로 이것 저것 약간 미친 척을 해야 숨통이 좀 트인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면연 주사를 맞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이 정상인 것이 청소년기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하고 청소년기 자아 중심성을 갖고 있는 그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약간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시기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자신은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라고 믿는다. 내가 경험하는 우정, 사랑 등은 결코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과격한 행동을 해도 나는 죽지도 않는다는 ‘개인적 우화’를 갖고 아슬아슬한 짓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상상적 청중’을 몰고 다님으로 멋을 낸다. 자신의 작은 실수나 어른들의 작은 비난도 상상적 청중 앞에서 자신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아이가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같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일 때 ‘아, 내 아이가 지금 스스로 면역 주사를 맞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는 그날 무섭기보다는 제 살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현명한 중딩과 고딩에게 아무 교훈도 해 주지 않고 열심히 들어 주었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