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친자 확인 바람] 어긋난 진실… 문명이 푸는 운명의 매듭

입력 2013-10-04 17:35


“의혹의 진위 여부가 종국적으로 규명되기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가 필수적입니다. 유전자 검사를 신속히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온 국민에게 확실한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것은 DNA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을 둘러싼 혼외자 의혹을 벗기 위해 유전자 검사에 응하겠다고 재차 공언했다. 지난 13일에는 대검찰청·조선일보가 친자로 지목한 아동에 대해 “유전자 검사에 응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발전한 유전자 검사 기술은 사실상 100%에 가까운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유전자 검사 자체가 아주 높은 기술을 요하지는 않는다”며 “결과도 대개 1~2일 내에 나온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에도 참고되는 이 기술은 그런데 과연 언제나 정확할까. 이 관계자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DNA, 진실을 밝혀다오

채 총장이든 누구든 일반적인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는 이렇게 이뤄진다. 검사 신청자들은 검사 신청서와 유전자 검사 동의서를 작성한 뒤 우편 또는 방문으로 ‘검체’를 유전자 검사 기관에 보내야 한다.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할 ‘법원 제출용’ 검체는 모근이나 입안에서 긁어낸 구강상피세포가 대부분이다. ‘개인 확인용’으로 의뢰하는 검체는 범위가 좀 더 넓다. 담배꽁초나 손발톱, 휴지 등도 유전자 검사에 활용될 수 있다. 한 유전자 검사 기관 관계자는 “담배꽁초의 경우 필터에서 타액을 분리해 검사에 활용하는데, 판별 시간만 조금 더 소요될 뿐”이라며 “법원 제출용이나 개인 확인용에 정확도의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생물학이나 유전공학 전공자가 대다수인 유전자 검사 기관의 연구원들은 검체를 전해 받는 즉시 DNA를 추출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에서 추출할 수 있는 DNA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증폭하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을 실시한다. PCR은 ‘중합 효소’를 이용해 DNA 단편의 복제본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유전자 검사에 해당하는 부분만 가려내는 작업을 거친 뒤 연구원들은 15개의 유전자 마커를 검사한다. 부·모의 유전자형과 자식의 유전자형이 각각의 대립유전자에서 일치하는지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친부확률값’이 99.99% 이상이면 친자관계가 성립한다. 그 외 경우에는 친자가 아니라고 판명한다. 15개 중 1∼2개 유전자 마커에서 돌연변이적인 불일치가 나타나면 추가 정밀검사를 수행한다.

유전자 검사 의뢰 접수부터 결과 통보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일 정도다. 기술력이 뛰어난 유전자 검사기관의 결론은 법원의 판단에도 인용된다. 2009년 서울가정법원은 “아들이 전혀 자신을 닮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69세 남성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을 인정, 이혼과 위자료 6000만원 지급을 판결했다.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은 이 남성의 주장이 아니라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의 유전자 검사 결과였다. 재판부는 “친자일 확률이 99.9999999997%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피고는 여전히 그 결과를 불신하고 있다”며 “가족들에게 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과연 틀림은 없나

“리사는 내 딸이 아닙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 따위를…. 이 동네의 인구만 해도 수십만인데, 오차범위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영화 ‘잡스’에서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는 리사가 친딸임을 인정하라는 변호사에게 냉정한 말을 건넨다. 설령 유전자 검사 기관의 결과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100%라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었다. 실제로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이들은 기관에 “정말 틀림은 없는 거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과연 모든 유전자 검사 결과가 완전무결할까. 정부는 “모든 업체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매년 전국의 유전자 검사 기관들을 평가하는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가 지난 5월 내놓은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다. 117개 기관 중 100곳(85.5%)은 ‘매우 우수’에 해당하는 A등급이었지만 나머지 10곳(8.5%)은 B등급, 7곳(6%)은 C등급에 그친 것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치명적이고 민감한 문제에서 영 틀린 대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업체가 많은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료기관이 아닌 비의료기관에서 B∼C등급의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었다. C등급은 ‘검사 능력 자체가 현저히 떨어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관계자는 “기술력 자체에 대한 정확도만 평가한 것은 아니고, 기계의 노후나 인력 부족 등 현장실사 내용을 다각도로 평가한 것”이라면서도 “법원이 친자확인을 의뢰할 경우 B∼C등급 기관에서는 검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의 조사는 매년 6∼11월 100여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검사실 운영, 분자유전, 세포유전 등 3개 분야에 대해 현장실사를 포함한 결과를 산출한다. 평가 결과 총점 90점 이상은 A등급, 80점 이상∼90점 미만은 B등급, 80점 미만은 C등급이 부여되며, 이 결과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에 공개돼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결말에서 나온 용의자에 대한 유전자 감식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관객이라면, 해당 유전자 검사 기관이 C등급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만하다. 그리고 만일 성사된다면 채 전 총장의 친자확인 검사는 A등급 기관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