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서 휠체어 옮겨준 친구 내 삶 바꿔”
입력 2013-10-03 18:49
지체 장애 1급으로 서울시교육청 행정직 첫 선발된 박지은씨
“친구들이 내성적이었던 저를 쾌활한 사람으로 바꿔놨어요.”
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체 1급 장애인 박지은(26)씨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최근 1급 장애인으로는 처음 서울시교육청 행정직 공무원에 뽑혔다. 3세 때 질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는 박씨는 휠체어에 앉아 시종 웃는 얼굴이었다.
학창시절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 “초등학교 3, 4학년 때 3·4층 교실을 배정받았다. 나쁜 것은 아닌 것 같고 사람들이 무지했던거죠”라면서 “등하굣길에 부모님이 항상 저를 안고 오르락내리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체육시간에도 부모님이 오셔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 5학년 때부터 급우들이 저를 올려줬는데 그때부터는 부모님이 학교에 오실 필요가 없었다. 당시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며 내성적이던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게 돼 중학교·고등학교 시절도 잘 보냈다”고 말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몇 층 교실에 배정받을까 조마조마했다는 그는 “교육청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학교 시설과 관련된 업무를 한다면 보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그는 수학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개인교습으로) 수학을 직접 가르쳐보기도 하고 교육업체에서 콘텐츠를 개발해본 경험을 살려 수포자(수학포기 학생)를 줄이는 일도 해보고 싶다”며 “설사 미미하더라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1월부터 교육청에 출근하게 되는 박씨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호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드넓은 대자연을 한번 보고 오고 싶다는 이유다. 인터뷰 내내 합격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었던 그는 “아빠가 여기저기 자랑을 너무 하신다. 평소 연락을 안 하던 먼 친척들에게도 전화를 하신다”면서 웃었다.
글·사진=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