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에 몸살앓는 국립공원] 토종 동식물, 황소개구리·애기수영과 생존 건 사투
입력 2013-10-04 04:58
국내 유일 ‘해안국립공원’ 태안국립공원 가보니…
“여기 한 마리 걸렸네. 어휴 냄새…. 이건 죽었네, 죽었어.”
지난 2일 충청남도 태안군 몽산포 해변. 태안해안국립공원 생태계개선관리팀 공원지킴이 김덕술(63)씨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투망을 건져 올리자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내장이 터진 황소개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주 화요일마다 1주일 전에 던져놓은 투망을 건져 올리면 웅덩이마다 3∼4마리가 걸려들어 있다.
또 다른 투망을 꺼내 올리자 투망 가득 손바닥만한 황소개구리 올챙이들이 미꾸라지와 섞여 올라왔다. 김씨는 투망에서 미꾸라지를 골라내 다시 웅덩이로 돌려보냈다. 황소개구리와 올챙이는 준비해 온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황소개구리는 매장하면 안 된다. 올해부터 바뀐 폐기물 처리법에 따라 황소개구리 사체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 때문에 쓰레기봉투 구입비를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생태계를 책임지는 태안해양자원과 윤모(34·여) 주임은 “태안국립공원에 황소개구리 개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투망으로 건져 올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전문가들에게 황소개구리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문의해도 뾰족한 방법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몽산포 해변은 사구 너머 빽빽이 들어선 해송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해변길 입구부터 ‘귀화식물 종자 채집 협조문’이 눈에 띄었다. 몸을 털면 신발이나 옷 등에 모래와 함께 붙었던 외래종 씨앗이 떨어져 모이게끔 한 모래판도 설치돼 있었다. 모래판은 외래종 문제로 고심하던 윤 주임이 지난해 귀화식물 문제를 연구하는 박사의 개인적인 도움을 받아 설치한 것이다.
윤 주임은 해변 입구부터 5분쯤 걸어 들어가다 모래 사이를 가리켰다. 옹기종기 모인 아기 손바닥만한 풀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의 골칫거리로 손꼽히는 애기수영 새싹이었다. 50㎝까지도 자라는 애기수영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된 외래식물이다. 다량의 종자가 멀리 퍼지는 특징이 있어 사구식물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사구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통보리사초, 갯그령, 갯메꽃 등 토종 사구식물 사이를 애기수영이 메우고 있었다. 뿌리째 두 대를 뽑아들며 윤 주임은 “발화기인 봄에 집중적으로 서너 차례 뿌리까지 뽑았던 지역인데 또 이만큼 났다”며 “새싹 크기가 워낙 작고 다른 식물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뿌리를 뽑아 없애는 대신 대체식물을 심어 외래종을 몰아내는 ‘생물적 방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현장에선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 사구 지역은 토질의 특성상 식물을 심기가 쉽지 않은 데다 외래종들이 대개 토종식물과 어우러져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체식물을 심기 위한 비용과 인력이 부족한 데다 대체식물이 오히려 토종식물의 성장을 방해할 우려도 크다.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인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생태교란 외래식물 분포 면적은 2만7500㎡이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넓다. 지난해 제거 작업을 펼친 지역만 2만3700㎡에 달한다. 외래동물의 경우 지난해 황소개구리 1226마리를 제거했지만 올해 서식 중인 개체 수는 그보다 많은 약 1300마리로 추정된다.
생태조사와 외래종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면적이 서울의 2분의 1 정도인 377.019㎢에 달하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외래종 모니터링 인력은 해양생물을 전공한 윤 주임 한 명이다.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부족한 예산 때문에 고무장갑, 쓰레기봉투 등 기본적인 장비 구입도 박찬 실정이다. 윤 주임은 “외래종 제거작업에는 연간 100∼2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는데 이들에게 물을 제공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생태계 교란종 및 외래종 관리 비용 명목으로 들어온 예산은 약 700만원이다. 윤 주임은 “생태계 최후의 보루인 국립공원조차 외래종의 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며 “전수조사를 돕고 매뉴얼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태안=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