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선언’ 6주년 짙어진 그늘… 합의 내용은 사실상 폐기
입력 2013-10-03 18:19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4 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 6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관련 행사도 축소됐고, 합의된 내용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채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통일부는 10·4 선언 기념일을 맞아 별도 행사 없이 노무현재단이 주최하는 4일 기념식에 예년처럼 차관을 보낼 예정이라고 3일 밝혔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북측위, 해외측위도 공동 기념행사를 추진키로 합의했지만 남북관계 상황 등으로 여의치 않다고 판단해 행사를 각각 개최했다. 3개 단체는 ‘민족공동위원회 결의문’에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철저히 지키고 이행하는 것을 조국통일 실현의 근본 문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0·4 선언의 주요 내용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전선언 추진과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안변·남포의 조선협력단지 조성 등이다. 하지만 정권 말에 이뤄진 남북 간 합의인 데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뒤 10·4 선언 합의 사항은 ‘선(先) 핵 포기’ 정책으로 인해 이행 과정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향후 5년간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밑그림이 담긴 제2차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안에는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추진 등 10·4 선언 주요 내용이 모두 삭제됐다. 특히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조성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과도 맞물려 있는 상황이다.
개성공단 정상화로 한때 해빙 조짐을 보이던 남북관계는 최근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 연기 통보 이후 다시 냉각기를 맞고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연기 이후 거의 매일 남한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조선인권연구협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괴뢰패당이 벌여놓은 ‘2013 북한인권백서’ 발간 놀음은 우리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정치적 도발이며 북남대결을 격화시키려는 반민족적 망동”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이 이산가족 행사와 금강산 관광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만큼 두 사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의 강경 자세는 대북 관계에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다시 이뤄지고, 금강산 관광 회담을 여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