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지원책 때문에… 장애인 야학 ‘등불’ 꺼져간다

입력 2013-10-04 04:58

경기도 안산시의 한 장애인 야학 교실에는 창문이 없다. 36㎡ 남짓한 공간, 환기가 이뤄지지 않는 탁한 공기 속에서 매일 저녁 25명의 장애인이 수업을 듣는다. 비좁은 교실에 학생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한 대밖에 없는 중고 에어컨을 틀자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화장실을 가려면 야학을 나와 근처 지하철역까지 이동해야 했다. 5분 거리지만 휠체어를 탄 학생들에겐 고역이다. 활동가 설예심(51·여)씨는 “학생들 식사비용이 부족해 직접 반찬을 만든다”며 “사명을 가지고 봉사하지만 여건이 열악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서울 안암동의 장애인 야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62.8㎡에 불과한 공간에 부엌과 사무실, 교실이 함께 있다. 8명의 교사가 한 달에 받는 돈은 교통비 명목의 5만원뿐이다. 매월 70만원에 달하는 월세는 시민들의 후원금과 상근 활동가 배미영(39·여)씨가 아르바이트를 해 마련한 돈으로 충당한다. 배씨는 “간식을 사는데도 한정된 예산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2008년부터 ‘장애인 특수교육법’을 시행함에 따라 장애인 야학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교육청 등록 조건이 까다롭고 명확한 지원 기준이 없어 현실과 괴리된 지원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각 지방 교육청은 교실이 49㎡ 이상이어야 평생교육시설로 등록을 받는다. 영세한 규모의 야학은 교육청 등록이 불가능하고 운영비도 받지 못한다. 미등록 상태에서는 교재 구입 등에 쓸 수 있는 사업비만 받을 수 있다. 전화비, 전기세, 인터넷 사용료 등은 알아서 부담해야 한다. 배씨는 “현재 정부의 정책으로는 작은 야학을 키울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구체화된 지원 지침도 없다. 현재 정부는 장애인 야학에 대한 지원을 각 지자체와 시·도 교육청에 일임하고 있다. 매년 장애인 야학 측과 지방 교육청이 협의해 지원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자연히 지역별 편차도 심하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의 한 야학은 지자체로부터 1년간 24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충북의 한 야학이 받는 금액(8200만원)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원을 해주는 쪽은 지자체이기 때문에 협의가 필요하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부실한 지원 탓에 장애인 야학 교사와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교육부의 ‘특수교육연차보고서’를 보면 2011년 388명이었던 교사는 올해 333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1114명이던 학생도 922명으로 감소했다. 배씨는 “한 달에 5명꼴로 수업을 듣고 싶다는 학생이 찾아올 정도로 장애인들의 반응은 뜨겁지만 여건이 열악해 다 받을 수 없다 보니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하금철 사무국장은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의 평생 교육권을 보장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