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책 대선공약 상품 찬밥신세… 실적 ‘0’
입력 2013-10-03 18:10
박근혜정부의 전세난 해결책이 시장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대선공약 상품이 출시됐지만 실효성 논란만 일 뿐 실적은 전무하다.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 불티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각에선 정부 대책이 세입자는 외면한 채 집을 사는 것만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은행 등 6개 국민주택기금 수탁은행이 지난달 30일부터 판매에 들어간 ‘목돈 안 드는 전세Ⅰ’ 상품의 대출 실적은 2일 현재까지 ‘0’이다. 신청 후 심사기간 등을 감안하면 출시된 지 3일밖에 안돼 대출실적 통계가 잡히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은행 관계자들은 신청 건수조차 없다고 입을 모은다.
A은행 관계자는 “현재까지 신청이 접수돼 대출 절차가 진행 중인 건은 없다”고 했고, B은행 관계자는 “문의 자체도 거의 없어 단기간에 신청이 늘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목돈 안 드는 전세Ⅰ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전세난에 허덕이는 서민 구제를 위해 내건 공약으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대출받고 이자는 세입자가 내는 구조로 설계됐다.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리려고 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상품 성격이 현재 상황과 전혀 맞지 않다는 데 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전세품귀 현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현실과 동떨어지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대출금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담보대출 이자 납입액에 대한 소득공제 등 집주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있지만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8월 출시된 ‘목돈 안 드는 전세Ⅱ’ 상품도 시중은행 6곳의 대출 실적이 105건, 67억10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집주인이 부도났을 때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은행에 넘기는 방식인데 이 역시 집주인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연 1%대 싼 이자로 주택자금을 대출해주는 수익·손익 공유형 모기지 상품은 신청이 폭주, 지난 1일 인터넷 접수 54분 만에 신청 제한선(5000명)을 모두 채웠다. 일반형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 대출 실적도 지난달 8999건, 8031억원을 기록하는 등 월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주택 구매 유도에 방점을 둔 정부의 ‘8·28 부동산 대책’이 약발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 장만이 어려운 세입자들에겐 매매 유도책이 ‘그림의 떡’인 만큼 세입자를 위한 정부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리는 정책도 바람직하나 세입자들의 주거안정 대책도 꼭 필요한 시점”이라며 “실효성 있는 금융상품을 내놓고, 장기전세주택(시프트) 물량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장희 박은애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