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에도 국립대학 ‘태학’ 있었다
입력 2013-10-03 17:35 수정 2013-10-03 17:43
삼국시대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태학(太學)이 백제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백제 유민의 묘지명(墓誌銘)이 중국 당나라 때 수도 시안(西安)에서 발견됐다. 그동안 고구려와 신라에는 태학이 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됐지만 유독 백제만은 그러지 못했다.
김영관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5일 충남 공주대에서 ‘7∼8세기 백제 유민의 발자취’를 주제로 여는 제6회 백제문화 국제심포지엄에서 시안에서 최근 발견된 백제 유민 진법자(陳法子) 묘지명(사진)을 공개한다고 3일 밝혔다.
김 교수는 묘지명 분석 결과 진법자는 웅진도독부 출신으로 백제 무왕 16년(615년)에 태어나 여러 관직을 지내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가 협공을 받자 투항했다. 이후 당나라에서도 관직을 지내다 690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지명에는 묘주(墓主)의 가계를 증조부터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증조는 진춘(陳春)으로 백제에서 태학의 정(正)을 지냈다.
김 교수는 “이로 보아 백제에 태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정(正)은 그 최고 책임자로 추정된다”면서 “진법자의 증조 진춘이 태학정으로 일한 시기는 위덕왕(재위 554∼598) 무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서기 등을 보면 백제가 왜에 오경박사(五經博史)를 파견한 점, 고구려와 신라 두 나라에 태학이 있었던 점 등에 비춰볼 때 백제 또한 태학이 있어야 하지만 워낙 백제사 자료가 엉성한 까닭에 증명할 수 없다가 비로소 그런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