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잘 지내십니까
입력 2013-10-03 17:38
일본에서 지낼 때 NHK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수도권의 어느 임대주택단지에서 일어난 고독사 문제를 심층 취재했던 내용. 언젠가 전철 창 너머로 바라봤던, 평범해 보였던 그곳에서 죽은 지 3년 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도 이웃도 누구도 찾지 않는 버려진 사람. 어느 날 갑자기 지켜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히 가버린 사람. 세상에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사람 사는 곳에서 사람이 백골이 되도록 모르다니. 나라가 잘살면 뭐하나, 참 허망한 인생들이라고 비아냥 섞인 동정을 보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비인간적인 죽음이 이렇게 빨리 우리 발등의 불이 될 줄은. 4대문과 보신각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뜻을 새기고 사는 우리는 사람의 도리를 안다고 자신했건만 실상은 그들만의 허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인의 날을 며칠 앞두고 부산에서 발견된 어느 할머니의 주검. 가족도 없고 찾아주는 이웃도 없고 나라의 보호도 받지 못했던 할머니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 자리에 버려져 있었다. 홀몸 노인 125만명, 가족 해체의 시대. 미혼, 이혼, 사별 등으로 늘어난 1인 가족이 사회의 보편단위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태어나는 생명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이 몇 배는 많아질 우리들의 앞날이 할머니의 주검에 비쳐지는 듯하여 심란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꺼져 가고 있을 생명들. 끊어져 버린 인간관계와 무관심 속에 차갑게 식어가는 목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홍역에 걸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일본의 어느 자치회장의 말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행정 또한 그렇다.” 결국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인사하고, 정을 나누고, 친구가 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얘기다.
언젠가 본 일본영화 ‘고독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유품정리업(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된 두 주인공. 죽음의 현장에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던 둘은 고립된 삶을 깨고 나와 바다를 향해 힘껏 외친다. “겡키데스카(잘 지내십니까)!” ‘죽음 뒤에 남겨진 것은 미래’라고 말하는 영화가 그들의 미래를 위해 건네는 물음이었다.
오늘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스산한 한 죽음을 목도했다. 그 죽음 뒤에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희망일까, 절망일까. 그 답을 찾기에 아직 늦지 않았길 바라며 그날의 우리에게 묻고 싶다. “잘 지내십니까?”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