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깊은 집’의 프리퀄… 越北 부친을 그리다

입력 2013-10-03 17:28


아들의 아버지/김원일/문학과지성사

“내 나이 여덟 살에 헤어진 아버지를 지금에 와서야 되돌아보며 당신이 남긴 이력을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회상하게 되었으니, 이 이율배반적인 내 마음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아이가 자라 성년이 되고, 다시 노년에 들어서야 어린아이로 돌아가려는 나 자신을 지켜보며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탠다면, 당신은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 앉을 수 없는 내게는 유일무이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리라.”(‘작가의 말’)

소설가 김원일(71·사진)의 신작 장편 ‘아들의 아버지’(문학과지성사)는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유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전작(前作)에 남로당 경남도당 책임 지도원로 등장했던 아버지이다.

하지만 여덟 살에 헤어진 아버지이므로 기억은 아스라하다. 그러니 기억의 복원이 관건일 터. 이를 위해 그는 세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해방과 전쟁 사이의 시대적 공간에 대한 서술은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르포식으로, 아버지의 생애와 그의 유년은 사실대로, 아버지를 형상화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측과 허구로.

마산상업학교를 나와 경남 진해시 진영읍 소재 금융조합 서기로 일하던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집에 머물지 않고 농촌지역에 강습소를 열었던 사회운동가였다. 그래서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도 실제로 본 모습보다는 사진첩이나 앨범 속 모습이다. “상업학교 졸업 앨범에 박힌 사진을 보면 갸름한 얼굴에 콧날이 섰고 눈동자가 갈색으로 꿈을 꾸듯 묽었다. 주제곡이 한동안 유행했던 이태리 영화 ‘부베의 연인’의 남자 주인공 조지 채킬리스의 키나 생김새가 당신 모습과 흡사했다.”(27쪽)

김원일은 이어 “나를 임신했던 1941년 당시 부부 사이가 극도로 나빠져 이혼 직전까지 갔던 어머니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이식받아 소심 불안증, 대인기피증, 만성적 우울증이 나에게도 새겨졌다”라고 고백한다. “나는 어머니 자궁 속에서 살았던 태아기 때부터 그 당시 어머니의 참담했던 심상을 탯줄을 통해 전달받아 대뇌의 디엔에이에 부관했다고 믿는다.”(50쪽)

이런 고백은 가족보다는 세상에의 의지가 강했던 아버지나 혹독하게 자신을 가르친 어머니를 고스란히 자신의 몸속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간 숙명에 대한 깨달음이 묻어난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인공 치하의 서울에서 헤어질 때의 아버지 나이보다 두 배가 넘는 고희에 이르면서 작가는 “이제야 정면으로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며 마침표를 찍는다. 아버지가 월북한 뒤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편모슬하에서 누나와 두 동생과 함께 세 들어 살던 이야기인 ‘마당 깊은 집’이 열세 살 무렵 작가의 모습이라면 이 소설은 이전의 이야기, 태아일 때부터 아버지가 월북하던 여덟 살 무렵까지를 다룬 전사(前史)에 해당한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