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의 프랑스어 작가 밀란 쿤데라(84)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 대학입학시험 출제위원으로 선발된 한 중년의 교수가 출제 장소에 수용되기 전 우연히 한 소설 원서를 가방에 넣고 갔다가 나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가방엔 소설의 번역 원고뭉치가 들어있었다.
소설은 1988년 가을 ‘세계의 문학’에 실렸다. 송동준 서울대교수가 번역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영원 회귀의 문제를 성(性)과 정치를 통해 다루고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누적 판매부수는 지금까지 70만부. 62쇄를 찍었다. 민음사 박맹호 회장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직역 제목에 대해 “제목 첫 머리의 ‘존재’라는 말이 무겁다”며 바꿀 것을 제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농담’ ‘향수’ ‘느림’ ‘정체성’ 등 후속작이 번역 출간되면서 쿤데라는 한국에서 세계의 거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건 쿤데라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출판 일지 제 1막에 해당할 뿐, 2막은 이어진다.
1968년 이른바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쿤데라는 그 짧았던 봄날이 소련의 침공으로 막을 내린 직후 자신의 모든 작품이 도서관에서 사라지고 판금 당하는 검열의 시대를 거쳐 1980년 프랑스로 망명한다. 체코 민주화 혁명을 다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프랑스에서 씌여져 1982년 출간되었지만 1989년 체코의 공산정권이 붕괴된 이후에도 고국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그가 체코어로 쓴 원고를 잃어버린 탓에 프랑스어 판 번역본이 체코에서 출판되는 것을 스스로 반대해왔던 것. 그가 프랑스어 판을 토대로 이 소설의 체코어 원고를 완성해 고국에서 출판한 것은 2006년이었다. 이 판본을 토대로 2009년 민음사 역시 과거의 번역 오류를 바로 잡는다. 프랑스어 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인 ‘토마스’와 ‘테레사’를 체코어 판 ‘토마시’ ‘테레자’로 바로 잡은 것.
이런 섬세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최근 출간된 민음사의 ‘쿤데라 전집’(전 15권)이다. 전집 출간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이를 위해 민음사는 2011년 봄부터 쿤데라와 몇 번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쿤데라의 출간 승낙이 떨어지긴 했으나 남은 문제는 전집의 무게감을 주기 위한 표지 디자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표지 디자인에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논의 과정은 이렇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엔 중산모자가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여류 화가 사비나가 알몸인 채 중산모자만 쓰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에로틱한 장면이다. “그녀는 모욕을 거부하기는커녕 마치 기꺼이 공개적으로 강간당하는 여자처럼 도발적이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 모욕감을 노출했으며 끝내는 더 이상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토마시를 밀어 쓰러뜨렸다. 중산모자가 탁자 밑으로 굴렀고, 그들의 육체는 거울 발치 양탄자 위에서 서로 엉켰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쿤데라의 모던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가 마그리트의 그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쿤데라 역시 만족스럽게 동의했다. 쿤데라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했다.” 이는 쿤데라 전집 제작에 쿤데라 자신이 보이지 않는 편집자로 참여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올 가을 쿤데라가 한국을 찾아왔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밀란 쿤데라의 모든 것… 프랑스 이어 두번째로 전집 완간
입력 2013-10-03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