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곽희문 (5) 합창단 지부장 내려놓고 쓰레기촌에 유치원을
입력 2013-10-03 17:06
합창단 지부장 사표를 쓰고 나니 홀가분했다. 더 이상 갈등을 안 해도 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 신학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신앙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 하나님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한 지인이 “어렵게 용단을 내리고 아프리카에 왔는데 돌아가느니 한국에서 학원 운영 경험을 살려 슬럼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봉사활동을 계속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것도 선교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나 역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일단 귀국을 결심했다. 가구를 정리하고 짐을 싸다 우리의 케냐행을 부추긴 쓰레기장 고로고초를 아내와 다시 한 번 찾았다.
쓰레기장은 여전했다. 치열한 생존터였다. 서로 더 나은 것을 주우려고 바둥거렸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아이가 혼자 놀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그 아이의 손 안에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인체의 안구’가 쥐여져 있었다. 우리 부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떻게 이런 것을 갖고 논단 말인가.
우리 부부는 서로를 쳐다보며 할 말을 잊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아내와 딸이 책을 통해 본 고로고초 소녀 ‘소피아’의 가슴 아픈 삶 때문이었다. 그런데 1년6개월 만에 케냐 생활을 접고 돌아가려는 이때, 고로고초에서 이 아이를 또 보여주시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 주님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라고 이곳에 보내신 것인데 엉뚱한 일만 하다 이제는 돌아가려 하다니. 원래 가족이 온 목적대로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 놀 것이 없어 사체 일부를 갖고 노는 이 척박한 땅의 아이들을 위해 너희가 발 벗고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한국행 전에 우연히 한번 더 들른 고로고초. 하나님은 손해나는 장사를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억지로 나를 끌어 이곳에 오도록 만드셨는데 떠나려는 나를 또 다른 어린아이를 만나게 함으로써 붙드시는 것 같았다.
“여보. 우리 그냥 여기서 일하자. 저렇게 할 일 없이 떠도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자.”
아내는 이번에도 오케이였다. 신기할 정도로 잘 따라주는 아내, 크리스천이 된 후 아내는 정말 변해 있었다. 나와 아내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앞뒤를 재지 않았다. 필요하니까, 마음에 감동이 와서, 어린이들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하나님이 하라고 시키는 것 같아 그저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었다.
애써 싸 놓았던 짐을 다시 풀었다. 섭섭하고 후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마음이 편안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쓰레기촌 어린이를 잘 돌보는 길은 유치원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슬럼가에 유치원을 열려고 시작을 해보니 장소 선택부터 돈도 많이 들고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나님, 쓰레기장과 가깝고 임대료가 싼 좋은 건물을 주세요.”
며칠을 기도했지만 세 가지를 다 갖춘 그런 곳은 없었다. 그런데 쓰레기장 바로 뒤 건물인데 임대료가 저렴해 가 보았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건물이 낡고 파리떼가 들끓는 폐가였다. 사람이 서 있는데도 쥐들이 자유롭게 건물 사이를 드나들었다. 아내가 기겁을 했다. 이날 밤 집에 돌아와 한숨을 쉬는데 순간 ‘폐가를 쓸 만한 곳으로 직접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날 이곳 집주인을 만나 계약한 뒤 대대적인 집 손질에 들어갔다. 그리고 간판을 내걸었다. 보라색 페인트로 엘토토유치원이라고 써 붙였다. 엘(EL)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란 뜻이고 토토(TOTO)는 케냐 스와힐리어로 ‘아이들’이란 뜻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