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노년학

입력 2013-10-03 17:32

철없던 시절엔 호적을 늦게 올린 탓이라며 제 나이를 한두 살 올려 불렀던 이들이 언제부턴가 조금이라도 젊어 보인다고 하면 주책없이 환호하는 게 보통이다. 나이 듦에 대한 불안과 젊음에 대한 간절함이 엿보인다. 이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현상이다.

노추, 노회, 노후, 노폐, 노쇠 등의 공통점은 늙음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데 있다. ‘추(醜)하고, 교활하며, 낡았고, 쓸모없으며, 쇠약하다’는 뜻이 그렇다. ‘노회’는 경험이 많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겼지만 역시 교활하다는 뜻의 회(獪)가 따라붙어 뭔지 의뭉스러운 느낌이 앞선다.

지혜롭다는 노마(老馬), 늦봄에 기교 넘치게 지저귀는 앵무새를 뜻하는 노앵(老鶯) 등 늙음을 지혜, 기교, 혜안이 넘치는 이미지로 담아낸 옛말도 있긴 하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면서 늙음은 당사자나 주변 모두에게 불안과 편견을 떠안긴다. 요즘 노인 대신 고령자, 어르신 등의 표현이 나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나이 든다는 게 과연 불안과 편견, 그리고 부담의 문제만일까. 서구에서는 일찍부터 이 점을 학제적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바로 노년학(Gerontology)이다. 독일의 면역학자 이리야 메치니코프가 20세기 초 그리스어로 노인을 뜻하는 ‘geront’에 붙여 명명한 학문 분야다.

노년학은 단지 고령자의 건강 유지와 치료만을 다루는 게 아니다. 연금 문제를 포함한 복지, 고령자의 사회참가, 생활여건 등 폭넓은 범위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1950년 세계노년학회(IAG)가 창설됐고 2005년 노년의료란 명칭을 덧붙여 세계노년의료학회(IAGG)로 확대됐다.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행복한 노후(successful aging)란 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노년학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에서도 1978년 한국노인학회가 창립됐지만 일반에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고령화 속도가 워낙 빨라서 우리 사회가 고령화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지 않은 탓이다.

이제 범사회적으로 노년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나이 듦에 대한 폄하와 막연한 불안감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노년학의 가능성을 확장시켜야 한다. 일부 생명보험사와 자산운용사들이 노인들의 자산 증식을 거론하며 은퇴 연구를 한다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대학에서 노년학 연구자를 적극 육성하는 한편 복지 전반에 대해서도 노년학 차원에서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엊그제 2일은 제17회 노인의 날이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