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피의 로마 원형경기장’ 이면속으로…
입력 2013-10-03 17:45
로마 검투사의 일생/배은숙/글항아리
왼쪽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폴리세 베르소(엄지손가락을 돌려서)’다. 로마 원형 경기장의 검투사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승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돌려 보이는 장면을 그렸다.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제작진이 시대물에 관심 없던 리들리 스콧 감독을 찾아가 이 작품을 보여주고 연출을 승낙 받았다는 일화로 더 유명해진 작품이다.
이 작품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것이 패자를 죽이라는 신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당시 모습을 담은 각종 부조와 기록 등을 토대로 봤을 때 관중의 손은 승자에게 검의 위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곧 칼을 내려 패자를 살려주라는 의미라는 얘기다.
그동안 로마 검투사에 대한 정보는 영화 ‘글래디에이터’, 미국 성인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등 대중매체를 통해 과장되고 극단적인 이미지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검투사 자체에 대한 기록도 적어 검투사를 직접 다룬 책은 반란을 일으켰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일부 번역서 정도만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로마사를 연구한 국내 저자가 5년간 발품을 팔아 해외 관련 사료를 거의 빠짐없이 수집, 분석해 검투사의 일상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저자는 20여년간 로마사를 연구해 온 배은숙(49·여) 계명대 외래교수. 그는 2008년 ‘강대국의 비밀-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를 저술하면서 로마 병사들의 훈련에 참여하고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검투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잔인하다’고 한 마디로 일축해버리는 대신 검투사와 로마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어떤 이들이 검투사가 됐는지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검투사는 당시 로마 시민들에겐 ‘인간’이 아니었다. 전쟁포로로 잡혀온 이들을 비롯해 검투사가 되면 모두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가난이 싫어 자발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고 검투사가 된 하층민과 심지어 여성 검투사도 있었다.
이어 검투사 경기를 개최하기 전까지의 과정, 실제 경기 당일의 모습, 검투사들의 이후 삶을 통해 로마인들에게 이 경기가 갖는 의미를 살핀다. 검투사에 초점을 맞추곤 있지만 자연스레 당시 로마인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장례식 때 일종의 의식처럼 치러지던 검투사 경기가 어떻게 로마 최고의 오락이 됐고, 기독교인의 박해 수단으로 변질됐다 사라지게 됐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저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 검투사 경기는 남자들이 갖춰야할 용맹함에 대한 교육장이었고, 노예와 범죄자의 처벌장이 되면서 체제 유지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