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는다고?… 땡! 세상에 그런 문자는 없다
입력 2013-10-03 17:23
훈민정음/김주원/민음사
9일은 22년 만에 공휴일로 다시 지정된 한글날이다. 혹시 한글날이 무슨 날을 기념해 지정된 것인지 아는지? 정답은 훈민정음의 ‘반포일’이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은 57.8%였다. 3분의 1은 훈민정음 창제일이라고 답했다. 정확히 모르거나 세종대왕 탄신일로 알고 있는 이도 있었다.
학창 시절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서문을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훈민정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실은 많지 않다. 몇 년에 어떻게 반포됐는지, 첫 반포 때의 것과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은 어떻게 다른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지, 정말 세계 최고의 언어인지 등.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훈민정음에 대한 신화를 깨고, 오해를 바로잡아 실체에 접근하게 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훈민정음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서울대 언어학과 김주원 교수가 사료 52장과 함께 교양인이 훈민정음에 대해 꼭 알아야할 것들을 소개한다. 지난해 서울대 인문학 강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강연을 토대로 쓴 것이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저자는 먼저 잘못된 상식부터 바로 잡는다. 흔히 ‘훈민정음이 나오기 전에는 무슨 말을 썼느냐’,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발명한 것이냐’고 묻는데 이는 잘못된 질문이다. 글과 말, 즉 언어와 문자를 혼동해 나온 실수다. 훈민정음은 ‘글자’로, 한자처럼 의미를 표기하는 ‘뜻글자’가 아니라 소리를 적는 ‘소리글자’다.
그렇다면 혹시 ‘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고 알고 있는가? 틀렸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은 좋으나, 아직 인류는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지 못했다.
하나 더. ‘한글이 세계기록유산’이라고 알고 있는가? 이번에도 틀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은 한글이 아니라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운용 원리를 설명한 책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경북 안동 이한걸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던 이 책은 1940년,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 전에 훈민정음에 대한 기록은 알려진 게 많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443년 12월 맨 마지막 조에 날짜도 없이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고 적힌 것이 첫 등장이다. 첫 기록으로 훈민정음의 완성을 알리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창제 과정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해례본 중 글자를 만든 원리를 설명한 ‘제자해(制字解)’의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다. 처음부터 자음자와 모음자를 구별하여 만든 것, 모음과 관련해 ‘설축(혀를 움츠린다)’이란 표현을 동원한 것은 현대 언어학의 연구보다 500년이나 앞선 것으로 문자 역사상 대단한 발전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해례본의 의미가 크고,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던 것이다.
한글에 찬사가 쏟아진 건 독창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창제 원리 때문만은 아니다. 창제 과정에서 드러난 세종의 ‘애민(愛民)’ 정신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드라마 등을 통해 알려졌다시피 세종이 훈민정음의 완성을 알리자 집현전 학자였던 최만리 등 신하들은 일제히 상소를 올려 훈민정음의 반포를 반대한다. 피지배층은 글자를 모르는 게 통치하기에 편하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달리 세종은 줄기차게 백성에게 글을 가르쳐 교화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세종이 1428년 진주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효행록’을 만들고, ‘삼강행실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만큼 확실한 가치관을 갖고 있었기에 논쟁이 벌어졌을 당시 최만리 등에게 ‘언문도 설총의 이두처럼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며, ‘삼강행실도’를 언문으로 번역해 백성에게 나눠주면 어리석은 지아비나 지어미라 해도 쉽게 알아서 충신, 효자, 열녀가 나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각종 논란에 답한다. ‘누가 제작자이냐’는 질문에 그는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같이 만들었다는 ‘협찬설’보다 세종 홀로 친히 글자를 만들었다는 ‘친제설’에 무게를 싣는다. 또 ‘언문’이 한글을 비하하는 표현이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항상 중국에 비해 우리의 것을 낮춰 부르던 사대주의 관례에 따라 중국 글자인 한문에 비해 우리 글자를 보통 일컫는 말로 언문, 언자 등으로 지칭한 것일 뿐 그 자체를 비하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글 창제 당시 세종이 참고했을 법한 문헌들을 통해 한글 창제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고, 다른 변방 국가들의 문자가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과정을 한글과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본문 중간에 삽입된 다양한 뒷얘기를 소개한 ‘남은 이야기’는 다소 전문적인 설명에 흥미를 잃을 법한 순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며 완독의 길로 이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