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객주’ 소설가 김주영 “무식하단 소리 들을까 끊임없이 공부하며 썼다”
입력 2013-10-02 18:53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애환과 사랑을 그린 김주영(74)의 대하소설 ‘객주’(전10권·문학동네)가 완간됐다. 34년 만의 일이다. 1979년 6월 서울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객주’는 1984년 연재를 마치고 9권 분량으로 출간됐으나 최근 울진의 염전과 내륙의 장시를 연결시켜주던 유일한 보부상길인 십이령길이 새로 발견됨에 따라 1권 분량의 마지막 이야기가 더해졌다.
2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주영은 “‘객주’ 9권을 내고 나서도 미진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면서 “1984년 ‘객주’의 서울신문 연재를 마칠 때 미련이 남아 주인공 천봉삼을 살려뒀던 게 10권을 쓰는 근거가 됐다”며 말했다.
10권 집필을 위한 답사와 자료조사에 1년 반이 걸렸다. 울진 근방에 염전을 일궈 부자 된 사람이 많다는 ‘택리지’ 구절을 읽은 후 실제 울진에 가 본 게 시작이었다. 염전에서 나는 소금은 보부상의 등짐으로 얹혀져 경상도로, 강원도로, 충청도로 퍼져 나갔고 그 경로에서 보부상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울진 십이령 초입엔 보부상을 위한 송덕비가 지금까지 서 있지요. 봉화에는 보부상들이 정착해 만든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고요.”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보부상들이 정착 과정에서 땅을 사면서 제 이름으로 사지 않고 ‘권안동’, ‘박원산’, ‘김예천’ 식으로 고향이 담긴 가명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공동재산 삼은 땅에서 소출이 나면 마을 전체의 것이 됐다. 지금도 매년 11월엔 보부상을 위한 제사가 이어지는 이유다. “사실 29년 전 신문연재를 중단한 건 더 이상 자료가 없기 때문이었지요. 5년째 꼬박 연재를 하느라 너무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보부상의 새로운 자료가 모아지면서 10권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저는 가난하게 자랐고 많이 배우지 못했고 병약한 몸으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객주’를 쓰면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공부했지요.”
그는 “박종화, 유주현 등의 기존 역사 소설이 왕조사와 궁중사에 치우친 반면 ‘서민사’에 너무 소홀했기에 서민의 가슴을 쓰다듬는 소설을 쓰게 됐던 것”이라며 “이런 소설 많이 나와서 서민들도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이끌어가는 계층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론이 분열될수록 국사를 읽음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이 과연 어디 있는지 익힐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국사교육이 필요한 겁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