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교실” 비명에도… 수업환경 안중에 없는 어느 학교
입력 2013-10-02 18:30
서울 중구 한양중학교 신입생인 A군은 올해 어느 해보다 힘겨운 여름을 지냈다. 비좁은 교실에 학생들이 촘촘하게 앉았기 때문이다. 책상 간격이 좁다보니 가뜩이나 더운데 움직일 때마다 급우들과 부딪혔다. 교실 뒤편에 있는 사물함 바로 앞에도 학생들이 앉아 있어서 사물함 이용도 눈치를 봐야 했다. A군은 “교실은 작은데 35명이나 들어가 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보니 한 대 있는 에어컨은 거의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2일 한양중 학부모와 재학생에 따르면 학교 재단(한양학원)이 재정적인 이유로 1948년 설립된 이 학교의 폐교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재단 측이 폐교 여건을 조성하려고 최근 3년 동안 학급수를 의도적으로 줄이면서 그 피해가 올해 신입생에 집중됐다는 것. 실제로 이 학교 1학년생은 106명이지만 학급은 3개 학급만 편성해 학급당 35.3명 수준이다. 2학년의 경우 106명으로 학생수가 1학년과 같지만 4개 학급이 편성돼 있어 학급당 26.5명에 불과하다. 인근 학교 1학년 교실과 비교해보면 대경중은 28.6명, 창덕여중은 26명으로 최대 10명 가까이 많다.
학부모들은 학교 측이 학습환경 악화를 방치하고 있으며, 일부러 학급수를 줄였다고 반발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이 2017년까지 중학교 학급당 학생수를 25명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한양중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정숙 한양중 폐교·이전 반대 대책위원장은 “학생들이 좁은 교실에 빈틈없이 들어가 수업을 하는 등 학생들의 수업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면서 “(학교가 학생들을 받지 않아) 코앞에 있는 학교를 놔두고 원거리 통학의 불편함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학원은 2009년에 한양중 폐교 결정을 내렸지만 학부모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한양중은 학급수를 줄인 것은 중부교육지원청의 정책이었다고 해명했다. 한양중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지원청에서 사립학교 학급수 감소 취지로 열린 회의 결과였다”면서 “학급당 학생수도 교내 축구부 인원 변동으로 지원청이 배정한 34명보다 1∼2명 정도 많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지원청은 학부모들의 문제제기에 내년에는 4개 반으로 조정하도록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학교 측은 당초 지원청이 배정한 34명 이하로 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들 경우 조정안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버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폐교 검토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양중 관계자는 “재단에서 폐교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한양공고를 활성화시키고 학생수가 적은 한양중은 결국 폐교 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 역시 “재단에서 중학교 2곳을 운영하다보니 법적부담금이나 건물 보수 등 재정적 부담이 더 크다”며 “구체적인 통폐합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재단 입장에선 통합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