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논란] 봉하 이지원 대화록, 국정원 공개 대화록과 내용 일치

입력 2013-10-02 18:20 수정 2013-10-02 22:10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없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복사해간 봉하 이지원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나 대통령기록물 삭제 논란이 일고 있다.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된 대화록이 지난 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했던 대화록과 같은 내용인 것으로도 2일 확인됐다.

◇대화록 생산·보관·실종 과정 재구성=조명균 전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비서관은 2007년 10월 3일 휴대용 디지털녹음기로 노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독회담 발언을 녹음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온 뒤 녹취 파일을 국정원으로 보내 문서형태의 녹취록을 받았다.

조 전 비서관은 정상회담에 배석한 김만복 국정원장과 자신이 메모한 내용, 국정원이 작성한 녹취원본 등을 참고해 보고용 대화록을 만들었다. 대화록은 이지원에 등록됐고 수정 과정을 거쳐 최종본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참여정부는 임기 말인 2008년 2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자료 목록 755만건을 정했다. 문서 등 비전자기록물은 대통령기록관 서고로 이관했고, 전자기록물은 97개 외장하드에 담아 국가기록원으로 넘겼다. 국가기록원은 외장하드에 담긴 데이터를 다시 기록물 열람시스템인 대통령기록물관리시스템(팜스·PAMS)에 옮겨 보관했다. 이지원에 저장된 문서도 외장하드에 담겨 팜스로 이관됐다.

참여정부는 이지원 시스템 자체도 기록물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시스템 소스코드와 데이터가 담긴 ‘나스’를 서고로 옮겼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넘긴 이지원 자료는 ‘원본 이지원’이 아니라 이관 대상 자료만 남기고 나머지를 삭제한 ‘수정 이지원’이었다.

검찰은 지난 8월부터 48일간 참여정부 정식 이관 기록물인 외장하드와 팜스, 나스를 전수조사했지만 대화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검찰은 대화록이 문서 형태로라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서고에서 표지 한 장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참여정부가 국가기록원 이관 자료를 정리할 때 이지원에서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삭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뒤 삭제·폐기된 게 아니라 대화록 자체가 이관 대상 목록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전 비서관도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은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다음 대통령도 봐야 하니 국정원에 두고 청와대에 두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봉하 이지원서 발견된 자료는 국정원 자료와 내용상 동일”=참여정부 이관물에서 찾지 못한 대화록은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됐다. 봉하 이지원은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 시스템 원본을 통째로 복제·저장해 봉하마을 사저로 옮겼던 자료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논란이 일자 그해 7월 국가기록원에 반납했다. 검찰 관계자는 “봉하 이지원에는 참여정부 청와대가 생성한 문서의 가장 원시적인 자료가 담겨 있다”며 “문서가 생성·수정·삭제된 흔적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봉하 이지원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대화록 한 개가 삭제된 흔적을 발견해 복구했다. 또 삭제된 것과 다른 버전의 대화록도 발견했다. 이 대화록은 삭제된 버전 이후 작성된 수정본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완성된 문건 형태로 국정원이 보관한 자료와 내용이 일치한다고 한다. 민주당은 지난 6월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은 원본과 다르다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국정원에서 받은 녹취록을 바탕으로 만든 대화록의 초안이 삭제됐고, 발견된 회의록은 대통령 보고 형식으로 만든 최종 수정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삭제됐다 복원된 대화록’이나 ‘발견된 대화록’, ‘국정원이 보관한 대화록’ 모두 내용의 동일성에는 변함이 없다. 개별적으로 완결된 형태”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