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통시장 구하기… ‘실버 상인’들 디지털에 접속하다
입력 2013-10-03 05:03
2일 오전 10시 서울 신설동 풍물시장 2층 교육장에 60∼70대 상인 10여명이 모여들었다. 몇몇 어르신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은 듯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이들은 주름이 깊게 파인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강의에 집중했다. ‘상품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인터넷 쇼핑몰에 올리는 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강사 임성현(41·여)씨가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확대하자 상인들은 신기한 듯 “아” 하고 탄식했다. 한 70대 할머니는 수업 내내 멋쩍은 표정으로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질문을 쏟아냈다. 풍물시장에서 6년째 생활잡화를 팔고 있는 박성술(73) 할아버지는 “늙어서 그런지 배워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며 “2년 정도 반복해서 배우고 또 배우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상품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수업에 참여했다. 수저를 파는 윤태규(70) 할아버지는 “예전보다 손님이 줄어 인터넷으로도 판매해 보려고 두 달쯤 전부터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며 “이미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했다.
풍물시장을 찾는 손님들이 점차 젊어지는 등 고객층이 변하자 이곳에서 수년간 장사를 해 온 ‘어르신 상인’들이 젊은 고객들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풍물시장은 고가구나 초기 브라운관 TV, 요강, 영화 포스터 등 오래된 물건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인이 60대 이상이다. 손님들도 나이가 적지 않은 ‘중년’ 위주였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운영한 이후 점차 ‘관광지화’되면서 최근엔 젊은 부부나 외국인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컴퓨터 교육도 어르신 상인들이 젊은 고객을 잡기 위한 자구책이다. 강의는 KT 사회공헌 직원이 일주일에 4차례 하고 있다.
풍물시장 한쪽에는 택배포장을 위한 전용 공간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노종철 풍물시장 사무국장은 “컴퓨터를 켤 줄도 모르던 어르신들이 요즘 인터넷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 시장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빈 가게가 생길 경우 젊은 상인들로 채워 넣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풍물시장에서 고가구와 골동품 등을 팔고 있는 최연소 골동품 감정사 이종하(31)씨는 “상인들이 나이가 들어 접는 가게를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 넘겨주는 방법을 상인회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청년 일자리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인회 측은 시장 홍보를 위해 토요일마다 정문 앞에서 통기타, 연극 등 20∼30대를 위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후문 쪽에는 전통문화체험관이 마련돼 방문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인회 측은 풍물시장의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건물 바닥에 페인트칠을 할 계획이다. 인터넷 판매가 늘 경우를 대비해 물류센터 설치도 서울시에 건의한 상태다.
상인회는 지난달 30일까지 풍물시장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접수했다.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을 입점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박노금 풍물시장 상인회장은 “풍물시장은 오래된 물건을 고쳐서 재판매하는 ‘자원 순환’의 공간이자 ‘명장들의 집합소’”라며 “젊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도록 건물에 벽화를 그리거나 전시장, 쉼터 등을 구축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