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한국판 ‘인상시리즈’의 탄생

입력 2013-10-02 18:03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연출자이자 실경산수공연 ‘인상(印象) 시리즈’로 유명한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은 문화로 도시 브랜드를 창조하는 미다스의 손이다. ‘인상 리장(麗江)’을 비롯해 ‘인상 시후(西湖)’, ‘인상 다홍파오(大紅袍)’, ‘인상 하이난(海南)’, ‘인상 구이린(桂林)’ 등 그가 선보인 인상 시리즈는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객을 불러들였다. 인상 구이린을 관람하기 위해 구이린에 가고, 인상 시후를 보기 위해 시후를 찾는 관광 풍속도를 만든 것이다. 지역민을 배우로 뽑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는 한편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도 고취시켰다.

지난 주말 경기도 수원과 경남 산청에서는 ‘인상 시리즈’와 맥을 같이하는 의미 있는 축제가 각각 열려 지역민과 관람객의 호응을 받았다. 조선 정조대왕의 효를 주제로 개최된 50년 역사의 수원화성문화제와 허준의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6일 개막한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그 주인공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서 개최된 수원화성문화제는 공연 등 문화행사를 매개로 지역 상권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점이 두어졌다.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는 지리산 자락에 둥지를 튼 약초 농가를 육성하고 산지가 80%인 두메산골 산청을 한의약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두 축제는 개막식부터 남달랐다. 지난 7년 동안 산청엑스포를 유치하고 준비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센 이재근 산청군수는 TV로 생중계되는 개막식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허준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한의약 발전을 위해 자신과 부인의 시신을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후진에게 양보하기 위해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는 3선 출마도 포기했다. 26평 서민 아파트에 사는 이 군수의 무욕(無慾)이 산청을 약초와 힐링의 고장으로 견인했다는 평가다.

인문학의 도시를 지향하는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난해 수원화성문화제를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수원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민간 전문가들에게 축제를 맡겼다. 시장과 정치인들의 얼굴을 홍보하는 자리였던 개막식은 격조 높은 공연장으로 변신했고, 조선시대 최대 군사 퍼레이드 ‘정조대왕 능행차’는 시민들의 끼를 발산하는 자발적 경연장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됐던 행궁동 일대는 그 전에 침체됐던 상권이 오히려 되살아났다.

수원화성문화제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수원화성의 연무대와 창룡문 일원에서 첫선을 보여 시민들이 크게 호응했던 총체공연은 올해 더욱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태어났다. 총체공연(무예종합예술공연)은 정조대왕의 을묘원행 야간군사훈련을 토대로 한 대형 공연. 인상 시리즈처럼 실제 성벽을 무대로 500여명의 연기자가 참여한 가운데 1시간 동안 영상쇼, 마상쇼, 3D 프로젝션 매핑, 레이저쇼 등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본인 유료 관광객이 총체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축제장을 찾아 새로운 한류공연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지자체의 세(勢)를 과시하거나 단체장 치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난립했던 지역축제는 한때 전국적으로 1200여개에 이르렀다. 벤치마킹이라는 미명 아래 이웃 지자체의 축제를 베끼거나 돈만 쏟아붓는 축제가 대부분이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관람객 수를 부풀리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 돈을 주고 주한 외국인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축제가 달라지고 있다. 경쟁력 없는 지역축제가 도태되고 유사한 축제가 통폐합되면서 지역축제는 800여개로 줄었다. 지역축제의 프로그램도 산청전통의약엑스포처럼 지역 특산품 판매를 확대하거나 수원화성문화제처럼 지역문화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민과 지역 발전을 위한 ‘한국판 인상 시리즈’가 전국 곳곳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