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진영 의원과 친박

입력 2013-10-02 18:09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친박(親朴)계와 연관된 신조어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대선 때 열심히 뛰었지만 아무 자리를 받지 못한 이들을 ‘홀박(홀대받는 친박)’, 대통령에게 쓴소리 했다가 밀려난 이들을 ‘짤박(잘려나간 친박)’이라고 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가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중용된 유일호 의원에게는 ‘옆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친박계에서 나갔다가 대선 때 합류한 ‘복박’,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간 ‘월박’, 영남 출신인 ‘구박’, 비영남 출신인 ‘신박’에 이어 새로 등장한 단어들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직에서 사퇴한 진영 의원의 경우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을 역임해 친박으로 통했다. 하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현역 의원의 캠프 참여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선거운동을 돕지 않자 친박계는 “무늬만 친박”이라고 쏘아붙였다. 진 의원이 2010년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 선거를 지원한 데 이어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관계는 더 악화됐다. 당시 친박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자 진 의원은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도저히 친박을 못하겠다”며 양해를 구한 뒤 ‘탈박’했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진 의원을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에 이어 복지부 장관으로 발탁했을 때에도 “친박계는 진 의원을 친박으로 보지 않는데, 박 대통령만 친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평이 돌았다.

박 대통령의 만류에도 기초연금 파동과 관련해 “저 자신의 양심의 문제”라며 장관직에서 물러난 진 의원을 겨냥해 친박계가 요즘 험한 말들을 다시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황태자가 대통령과 당을 배신했다”거나 “아주 못된 양반”, “사표 전문가”라는 거친 표현들이 동원됐다. 일각에서는 진 의원을 출당 조치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진영 파동’을 계기로 ‘원박(원조친박)’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어렵게 만든 진 의원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건 맞다. 그러나 동료 의원에게 인신공격성 발언들을 퍼붓는 것 역시 볼썽사납다. 집권세력의 격을 스스로 낮추는 꼴이다. 나아가 진 의원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박 대통령에게 ‘충성경쟁’이라도 벌이는 모양새로 비치기도 한다. “콩가루 집안인지 국민들 보기 민망하다”는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