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논란] 檢, 참여정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판단

입력 2013-10-02 17:53 수정 2013-10-02 22:13

검찰은 2일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반드시 이관돼야 할 것이 안 됐으니 그 자체로 문제고, 삭제됐다면 더욱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사실상 대통령기록물로 판단하고, 이를 이관 기록물로 분류하지 않은 채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서 삭제한 것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결론 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대화록의 ‘이관’ 문제보다는 ‘삭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당 법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폐기할 수 있으며 임의적인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이 금지돼 있다. 무단으로 파기한 경우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 관련 자료 중 정상회담 대화록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느냐”며 “초본이든, 수정본이든 기본적으로 삭제됐다면 위법행위”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지원의 복사본인 ‘봉하 이지원’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자료 분석 작업을 마무리하고 국가기록원에 나가 있던 디지털 자료 분석용 특수차량을 철수시켰다. 다음 주부터는 대화록 생산과 보관, 이관 등에 관여한 참여정부 인사 30여명에 대한 직접 소환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들은 수사 착수 이후 줄곧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다 최근 “조사에 협조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임상경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 등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 전 원장과 조 전 비서관은 남북 정상회담 배석자로서 회의록 작성에 관여했고, 임 전 비서관은 이지원에서 관련 기록을 관리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원장 등은 이미 지난 7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경우에 따라 2007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대화록이 어떤 경위로 삭제됐는지, 국가기록원 이관 대상 기록물에서 빠지고 봉하 이지원에만 남아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불법적으로 대화록을 삭제한 사실이 확인되면 형사처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검찰은 회의록의 성격을 ‘공공기록물’이 아닌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최종 판단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내부 결론은 나와 있지만 향후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밝히겠다”고 답했다. 검찰은 지난 2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을 둘러싼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할 때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던 회의록 발췌본을 공공기록물(2급 비밀)로 규정한 바 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