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실종 대한민국] 규제 대폭 풀어줬건만… 곳간 틀어쥔 기업, 립 서비스만
입력 2013-10-02 17:42 수정 2013-10-02 22:31
정권 초기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면서 기업을 옥죄던 정부가 하반기 들어 기업 친화적으로 돌아섰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에 채찍을 드는 대신 당근을 주면서 투자확대라는 선물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업의 화답은 ‘립 서비스’ 수준에 그치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회귀한 정부=대기업 규제를 담은 정부의 입법안들은 원안보다 후퇴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이었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대기업 계열사 1519개 중 10%에 미치지 못하는 122개로 축소됐다. 대기업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안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입법예고 이후 정부 내에서 수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9개 경제단체가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규정 등을 문제삼아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이를 받아들였다.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도 당정 협의를 거치면서 정부 원안보다 적용 대상과 처벌 폭이 대폭 축소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기업들은 여전히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우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하반기 들어 기업 규제 방안은 갈수록 ‘비즈니스 프렌들리’화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2일 “올 들어 경제민주화가 불거졌지만 오히려 기획조사는 크게 줄어들었다”며 “경제민주화 규제도 완화되면서 기업들이 울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미적거리는 기업투자에 성장동력 훼손 우려=5월 이후 5개월 새 정부는 3차례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특히 환경 및 입지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수도권 입지 규제 외에는 쓸 수 있는 카드를 대부분 썼다. 대기업 위주 투자활성화대책과 함께 중소·중견기업과 벤처기업을 위한 맞춤형 투자지원 방안도 발표했다.
정부는 이런 대책과 함께 상반기 집중적인 재정 투자가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하반기에 기업투자가 살아나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3분기가 지나고 10월이 됐지만 정부 기대만큼 기업 투자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기업의 투자 목표치는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공사에 따르면 기업의 설비투자 실적은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연초목표치에 비해 각각 4.9%, 3.0% 모자랐다.
경제성장률이 지난 2분기 9분기 만에 1%대에 진입했지만 현재와 같이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금융산업실장은 “최근 경상수지 흑자가 많이 나지만 수출이 잘 되기보다는 자본재 수입 등 설비 투자가 부진하면서 수입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며 “2분기 성장률이 1%대에 진입했지만 질적으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부진이 이어질 경우 성장동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2일 “당장 올해도 문제지만 투자가 살아나지 않으면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내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