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한국에서는 왜 초라해지는가?

입력 2013-10-02 17:28


미국 팝스타 로빈 시크(36)의 노래 ‘블러드 라인스(Blurred Lines)’를 아시는지. 지난해 가수 싸이(36)의 히트곡 ‘강남스타일’이 그러했듯 올해 이 노래는 지구촌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중독성 강한 리듬, 이목을 사로잡는 뮤직비디오 등 히트의 이유 역시 ‘강남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블러드 라인스’는 지난달 초까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무려 12주간 정상을 지켰다. 올 들어 최장기간 1위에 랭크된 노래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1억8000만 건 넘게 조회됐다.

하지만 국내 음악시장에서 로빈 시크의 존재감은, 그리고 ‘블러드 라인스’의 인기는 미미한 수준이다. 노래는 최근에서야 한 TV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조금씩 인지도를 쌓고 있다. 올 상반기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쓰리프트 숍(Thrift Shop)’ ‘캔트 홀드 어스(Can’t Hold Us)’ 등 2곡이나 1위에 랭크시킨 듀오 ‘맥클모어 앤 라이언 루이스’도 국내 대중에겐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서 팝의 위상은 가요의 인기와 견줬을 때 초라하다. 해외에서 열풍을 일으킨 노래도 우리나라에선 이렇다할 반응을 못 얻는 경우가 많다. 과거 많았던 팝송 관련 잡지나 라디오 프로그램도 거의 사라졌다. 왜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선 해외 음악이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걸까.

◇추락한 팝의 위상=1980년대만 하더라도 팝의 인기는 대단했다. ‘월간팝송’ ‘뮤직피플’ ‘하모니’ 등 다양한 팝송 관련 음악전문지가 인기를 모았다. 김광한(67) 김기덕(65) 황인용(73) 전영혁(61) 등 팝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던 라디오 DJ들 역시 스타 못지않은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부터 팝의 인기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팝이 차지하는 위치는 각종 차트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 공인 차트로 통하는 가온차트에서 매기는 연간차트의 경우 지난해 이 차트 100위권에 이름을 올린 팝송은 미국 팝밴드 마룬파이브의 ‘페이폰(Payphone)’을 비롯해 4곡이 전부였다. 2011년과 2010년 해당 차트 ‘톱 100’에 이름을 올린 팝송도 각각 2곡, 1곡 밖에 없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음악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팝의 저조한 인기는 실감할 수 있다. 콘진원이 지난해 4∼12월, 만 15∼49세 성인남녀 33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음악콘텐츠 소비자 구매실태 조사’에서 가요를 좋아한다는 응답은 70.5%, 드라마나 영화 OST를 즐겨 듣는다는 답변은 10.5%에 달했다. 하지만 ‘미국 팝’을 좋아한다는 비율은 8.6%에 그쳤다.

◇팝의 약세는 언제까지?=전문가들은 팝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로 우선 높아진 가요의 완성도를 언급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대중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뒤부터 우리 음악이 서양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팝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 의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요의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 트렌드를 재빠르게 포착해 ‘국내화’하는 뮤지션이 많아지면서 굳이 팝을 찾아들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이 밖에 국내 음악에만 집중하는 미디어들의 태도 등을 꼽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팝은 국내 시장에서 70, 80년대 누렸던 영광을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 의견은 엇갈렸다. 이세환 소니뮤직 차장은 “록 페스티벌과 팝스타들의 내한공연이 증가하고 유튜브 등 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늘어난 만큼 ‘팝 문화’는 다시 대중에게 가까워질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경준 음악평론가는 “대형 기획사와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음악적 취향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다시 팝이 인기를 얻는 건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